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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생각] 바다를 잃은 나라 — 노벨평화상과 항구 사이에서

월요일, 아프리카 동쪽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의회 안에서 아비 아메드 총리가 다시 5년 임기를 시작하는 선서를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우리는 바다로 나갈 길을 반드시 확보하겠다." 에티오피아는 바다가 없는 나라다.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땅 한가운데 있다. 인구는 아비 총리 말로 1억 5천만 명이다. 그 많은 사람이 살아가려면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는데, 배를 띄울 항구가 하나도 없다. 1993년 에리트레아가 독립하면서 해안선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쓰던 아삽 항구도 1998년부터 2년간 벌어진 전쟁을 끝으로 닫혔다. 지금은 옆 나라 지부티의 항구를 빌려 쓴다. 커피를 팔든 기름을 사오든, 늘 남의 나라 문을 지나야 한다. 자기 집에 현관이 없어서 이웃집 대문을 빌려 드나드는 셈이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아비 총리는 201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다. 바로 에리트레아와의 국경 분쟁을 끝냈다는 공로로. 심사위원들은 국경 다툼을 멈추고 평화를 이끌어냈다며 상을 줬다. 그런데 그 상을 받은 지 7년 만에 두 나라는 등을 돌렸다. 지난 10월 1일,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에 있던 자기 대사관을 닫고, 자기 땅에 있던 에리트레아 외교관 10명에게 48시간 안에 나가라고 했다. 에리트레아는 곧바로 "모든 외교 관계를 끊겠다"고 맞받았다. 평화의 상징이 두 나라를 갈라놓은 셈이다. 동시에 북쪽에서는 전쟁이 다시 붙었다. 9월 20일, 에티오피아 곳곳의 무장 단체 일곱 곳이 뭉쳤다. 티그라이 지역의 옛 집권 세력인 티그라이 해방인민전선(TPLF)도 여기 끼었다. 이들은 아비 정부를 끌어내리겠다고 선언했다. 사흘 뒤인 9월 23일부터 정부군과 이들의 교전이 시작됐다. 10월 3일, 정부군은 티그라이의 중심 도시 메켈레를 되찾았다. 티그라이 쪽은 큰 싸움 없이 물러났다며 다른 곳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싸움은 옆 지역인 아파르와 암하라로 번졌다. 2020년부터 2...

[지오의 생각] 우간다의 왕은 왜 시신 곁에서 싸우는가

포트포털의 거리에는 수천 명이 늘어섰다. 주황빛 어깨걸이를 두른 왕실 경비대가 관을 태운 영구차를 인도했고, 사람들은 발로 행렬을 따라가며 왕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34살 오요 님바 카밤바 이구루 루키디 4세는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세 살에 즉위해 기네스가 '세계 최연소 군주'로 기록한 소년은, 이제 왕실 묘지에 잠들었다. 그런데 이 장례식은 애도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관이 땅에 묻히기 이틀 전, 왕실 가족은 후계를 둘러싸고 불꽃처럼 대립했다. 부족원회는 고인의 사촌이자 UBC 방송 앵커인 에드워드 루키디 키자낭고마(56)를 새 왕으로 지명했다. 반면 오요의 누이 루스 코뭉탈레 공주는 고인이 2022년 남긴 유언장에서 '알려지지 않은 아들'을 후계로 지명했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왕대비 베스트 케미기사는 "내 아들이 아직 관 속에 누워 있는데"라며 선대위의 급작스러운 발표를 비난했다. 이 갈등을 보는 내 시선은 단순한 '왕실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우간다의 전통 왕국은 정치적 권력이 없는 상징적 문화 지도자 체제다. 토로 왕국은 1967년 공화정에 의해 폐지됐다가 1990년대 무세베니 대통령 아래 부활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의 대상은 실질적인 권력이 아니라 '상징'과 '정통성'인데, 그렇기에 더욱 날카롭다. 권력이 없어도 정통성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전통이라는 게 실제 힘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계승한다고 인정받는가'라는 인정 투쟁임을 드러낸다. 양측 주장을 하나씩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부족원회는 "바비이토 전통과 토로 백성의 뜻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한 매체 보도는, 원회가 '고인에게 아들이 있다'는 측에 그 아들의 사진, 어머니의 씨족, 가족 관계를 요구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고 전한다. 반면 코뭉탈레 공주 측은 "엄격한 지시"가 담긴 유언장이 있다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