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와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다면 길고 넓다면 넓은 보행길이 펼쳐진다. 길은 확 트여 있고, 그 끝에 여의도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공원 바로 앞,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건널목도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저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면 나도 모르게 멀리서 신호등을 신경쓰게 된다.
희미하게 보이는 신호등의 불빛을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해 보려 애쓰게 되고, 혹시 지금 파란불이면 내가 그 타이밍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까, 아니면 빨간불로 바뀔까 머릿속이 바빠진다.
그러다 한 가지 단순한 방식을 깨달았다.
“그냥 건널 때 보고 판단하자.”
멀리서 신호등이 바뀌는 타이밍을 예측하며 괜히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늦추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내가 건널목 앞에 도착했을 때 파란불이면 건너면 되고, 아니면 잠시 기다리면 그만이니까.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면 내 속도를 생각해서 판단하면 된다.
문제는 깜빡이기만 하는 경우다. 아니 문제랄 것도 없다. 핵심은 깜빡인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남들 다 건너고 나서 불이 바뀌는 상황. 나만 멍청하게 기다렸다는 그 상황에 남들이 혹시라도 비웃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뭘 고민하고 있나? 깜빡이는 건 이미 건너는 사람 빨리 건너라는 것이다. 물론, 한참을 깜빡이며 두 번 정도 건널 시간을 주는 배신(?)행위를 하는 신호등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라고? 내가 급한 게 아니라면 그냥 기다리자. 너무 급해서 건너야 한다면 지금 나는 무단횡단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건너라. 비겁하게 발 한 짝 걸치며 자위하지 말고.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나니 길이 한결 편해졌다. 굳이 예민하게 속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가 가는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
신호등은 건널 때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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