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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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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나 뭔가를 느낄 수 있나 싶은 사례들을 들먹이며 이렇다저렇다 주장하는 자기계발서 느낌입니다.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위인들을 들먹이며 창작된 이야기를 근거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보였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나름 좋은 말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제 감성이 미국인이 아니다 보니 소설로서의 감동도 깨우침도 없었습니다. 공감되지도 않은 이런저런 예시 따위 치우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장이나 몇 줄 적고 끝냈어도 될법한 느낌이었습니다. 살면서 꼭 봐야 하는 그런 책은 아니라 봅니다.

사기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당신을 낚는 유튜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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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이거 돈 됩니다"라더니… 공익을 빙자한 유튜브 '조회수 피싱'의 씁쓸함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자주 걸리는 영상 테마가 있습니다. 바로 피싱 및 금융 사기 예방 콘텐츠입니다. 날로 교묘해지는 사기 수법을 알려주어 피해를 막겠다는 의도는 분명 박수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전달 방식'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채널이 시청자의 안전을 위함인지, 아니면 본인의 조회수 수익을 위함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목부터 썸네일까지, 설계된 낚시 이런 영상들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순간부터 이미 전략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대개 이런 식입니다. "이 XX들 진짜 법 없이 사냐, 요즘 신종 사기 수법 공개" "카카오톡으로 접근하는 사기꾼들 실체 폭로"  사기꾼을 향한 분노와 욕설이 섞인 제목은 얼핏 '경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제목의 실제 기능은 따로 있습니다. 분노한 누군가가 내 편에 서서 뭔가를 폭로한다는 느낌, 그 감정적 동질감이 경계심을 낮추고 클릭을 유도합니다. 썸네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 사진, 흐릿하게 가려진 채팅창 캡처, '실제 피해자'라는 자막이 붙은 뒷모습. 표면적으로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형식이지만, 가려지고 흐려진 것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저 뒤에 뭔가 있다'는 느낌. 진정으로 피해자 보호가 목적이라면 굳이 그 사진을 썸네일에 쓸 이유가 없습니다. 모자이크라는 형식 자체가 "여기 자극적인 것이 있다"는 신호로 기능한다는 걸, 제작자도 알고 있습니다. "돈 드립니다"로 시작해 "사기입니다"로 끝나는 기만적 편집 영상 안으로 들어오면 본격적인 패턴이 시작됩니다. 초반에는 자극적인 자막과 함께 사기 수법을 마치 '돈 버는 꿀팁'인 양 소개합니다. "클릭 한 번에 5만 원 받는 법...

저런 영상은 개소리로 판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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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암기법에 관한 영상을 봤다. 유튜버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 방법을 사용하면 누구든 쉽게 암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주절거림, 암기 예시문을 보여주고, 방법을 알려주고, 이제 외웠을 거라고 말하며 이제 모두 이 기술을 활용하면 암기를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마무리한다. # 내가 삐딱해진 이유 심플하다. 예시 문장을 바로 암기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싶어서 좀 오래 보면 외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 그건 그냥 외우는 거잖아. 알려준 방식에 원리 같은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설명하는 게 주장의 근거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단맛은 혀 끝에서 느껴진다고 가르쳤다. 나는 분명 입 안 전체에서 단 맛을 느끼면서도 혀 끝에서만 맛을 감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게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과거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유튜브 영상이 그런 오류를 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암기되지 않았다. 금방 외우지도 못했다. 그러니 저 방식은 적어도 나에게 효과는 없는 것이다. '누구나 따라하면 쉽게 암기하는 방법' 따위가 아니라는 소리다. 뇌피셜 이거나 다른 사람의 평범한 여러 암기법 중 하나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 대충 찍은 증명사진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는 지금은 똑똑하고 잘 나간다면서 자신이 쓴 책이나 했던 일을 근거로 내가 해보니 맞더라를 강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하는 사람을 조심한다. 이러한 패턴을 자신의 모든 영상에 포함하는 유튜버는 특히 조심하고 있다. 저 유튜버도 그런 부류였다.영상 하단에 쇼핑 링크가 같이 있는 것으로 나는 저 사람은 내 인생에 쓸모없는 것이라 판단했다.

신호등은 건널 때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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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와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다면 길고 넓다면 넓은 보행길이 펼쳐진다. 길은 확 트여 있고, 그 끝에 여의도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공원 바로 앞,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건널목도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저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면 나도 모르게 멀리서 신호등을 신경쓰게 된다. 희미하게 보이는 신호등의 불빛을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해 보려 애쓰게 되고, 혹시 지금 파란불이면 내가 그 타이밍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까, 아니면 빨간불로 바뀔까 머릿속이 바빠진다. 그러다 한 가지 단순한 방식을 깨달았다. “그냥 건널 때 보고 판단하자.” 멀리서 신호등이 바뀌는 타이밍을 예측하며 괜히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늦추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내가 건널목 앞에 도착했을 때 파란불이면 건너면 되고, 아니면 잠시 기다리면 그만이니까.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면 내 속도를 생각해서 판단하면 된다. 문제는 깜빡이기만 하는 경우다. 아니 문제랄 것도 없다. 핵심은 깜빡인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남들 다 건너고 나서 불이 바뀌는 상황. 나만 멍청하게 기다렸다는 그 상황에 남들이 혹시라도 비웃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뭘 고민하고 있나? 깜빡이는 건 이미 건너는 사람 빨리 건너라는 것이다. 물론, 한참을 깜빡이며 두 번 정도 건널 시간을 주는 배신(?)행위를 하는 신호등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라고? 내가 급한 게 아니라면 그냥 기다리자. 너무 급해서 건너야 한다면 지금 나는 무단횡단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건너라. 비겁하게 발 한 짝 걸치며 자위하지 말고.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나니 길이 한결 편해졌다. 굳이 예민하게 속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가 가는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 신호등은 건널 때 보면 된다.

피자가 맛은 있는데, 이 돈 내고 먹기에는 돈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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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피자를 시켜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형마트에서 파는 큰 피자를 사다 먹었을 것 같은데 오늘따라 일반 매장에서 시켜 먹어보고 싶었다.  대략 2만 6천 원. 비싼가? 비싸다. 나는 비싸다고 생각한다. 가격은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배달 온 피자를 보면서 더욱 비싸다고 생각했다.  보기도 좋고 맛도 있었다.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 이게 라지다. 아, 보통 라지가 이 정도 크기였나? 하도 대형마트 피자만 먹다 보니 크기가 상향 평준화가 되어 있다.  그래, 이 정도 크기가 라지라고 치자. 그래서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양에 이 정도 재료가 2만 6천 원은 비싸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그랬다. 피자는 아무리 봐도 거품이다. 왜 여기에만 이런 거품이 끼었나? 피자헛이 원흉이 아닐까?  개인 생각은 블로그에나 적으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적는다. 피자는 진짜 거품 같다. 무한정 가격이 오르는 치킨보다 더 돈이 아깝다.    건강하게 살자. 앞으로 피자는... 가끔만 사 먹자. 

삼일카레를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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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던 유튜브에서 광고하길래 구매했다.  무언가 카레... 소스 같은 느낌이 드는 제품이다. 아마도 큰 건더기가 없고 걸죽한 느낌이라 그런 것 같다.  즉흥적으로 밥과 소면을 섞어 먹을 생각을 했다.  카레는 밥을 넣어야 하고, 라면을 좋아하지만 기름이 많이 나오니 소면을 쓰자는 논리다.  면 삶은 물은 카레를 데우는 데 재활용한다.  추가로 뭔가 심심한 느낌도 들어서 참치캔 하나를 추가했다.  드디어 완성!  맛은 어떤가?  일단 소면은 넣은 의미가 없었다. 아무 맛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식감도 없었다. 탄수화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굳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참치의 경우도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기름 맛 살짝 느껴보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 오히려 더 걸죽해지는데 일조한 느낌이다.  오뚜기의 3분 카레 보다는 인스턴트 느낌이 덜했지만 소면을 괜히 넣어서 밍숭맹숭하게 먹은 감이 있다.  밥과 면을 같이 넣기 보다는 둘 중 하나만 넣고 참치보다는 씹는 맛이 있을 것 같은 고기를 넣어봐야 할 것 같다.

오뚜기 크래프트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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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카레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고기와 야채를 크게 썰어서 볶고 카레 가루를 물에 풀어 만드는 엄마손 카레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서 홈플러스에서 3분 카레를 집어 들었다.  예전에는 급식에 나오는 인스턴트 카레를 엄청 싫어했다. (짜장은 더 싫다.) 마요네즈나 치즈도 싫어하던 시절이었고, 나이를 먹으며 마요네즈나 치즈가 좋아지듯이 인스턴트 카레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짜장은 지금도 싫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3분의 세계. 다양한 맛의 카레가 보였다. 내가 크래프트 카레를 집어 든 이유는 예전부터 봤던 회사가 오뚜기였고, 포장도 뭔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카레를 산 당일에는 같이 구매한 순살 치킨을 먹었고, 다음 날 남은 치킨에 카레를 부어 먹기로 생각했다.  카레에 밥은 기본이라 생각해서 밥도 넣는다.  맛은 어떤가? 치킨의 경우,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전자레인지로 뜨겁게 데워 먹었다. 뜨겁고 눅눅한 껍질에서 느껴지는 콩기름 맛이 좋았고, 고기 자체는 식감이 좋았다. 카레는 이전에 먹어봤던 기본 3분 카레보다 진득한, 뭔가 우유나 치즈? 그러한 것들이 더 들어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한 맛이 났다.  문득, 시간을 내서 시중에 파는 인스턴트 카레를 하나씩 다 먹어보면 어떨까 싶기도 했지만, 생각만 해도 귀찮아서 목표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삼일 카레'라는 제품의 광고가 나와서 구매해 보았다. 다음에는 이것을 먹어볼 생각이다.

내가 잘못하니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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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못하니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 욕심만 채우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그런 이기적인 사람일 리 없을 거라고 자위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맞다는 이유를 찾는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욕심만 가득해서, 이런 내가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AI를 표절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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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절은 오랜 시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남의 것을 베끼는 행위는 창의성이 결여되고 나태하며 부정직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렇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표절은 계속되었다. 표절이라는 행동 자체는 인간에게는 쉽고 효율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방의 동물이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선례를 따르고 모방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표절이라는 행위를 비난받지 않고 자기 발전에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다시 표절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봤다.  그냥 베낀다는 게 아니다. AI가 만든 것을 내 것이라고 말하라는 것도 아니다. 표절을 하라는 것이다. AI가 만든 것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내 것으로 채워 넣고, 들키지 않기 위해 가공하고 편집하여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그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인간에게 표절이 쉬운 일이라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AI가 만든 것을 표절하는 것은 비난받지 않으면서 새로운 내 것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AI가 합법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다.

그냥 밤양갱이 삐딱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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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바라는 건 밤양갱뿐이었다는 그 말이, 지금까지 네가 했던 모든 것이 나에게 의미 없었다고 들린다.  부드럽고 달콤한 공기의 진동을 말이라 포장하는 세상을 살다 보니, 죄다 삐딱하게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