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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당신을 낚는 유튜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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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이거 돈 됩니다"라더니… 공익을 빙자한 유튜브 '조회수 피싱'의 씁쓸함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자주 걸리는 영상 테마가 있습니다. 바로 피싱 및 금융 사기 예방 콘텐츠입니다. 날로 교묘해지는 사기 수법을 알려주어 피해를 막겠다는 의도는 분명 박수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전달 방식'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채널이 시청자의 안전을 위함인지, 아니면 본인의 조회수 수익을 위함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목부터 썸네일까지, 설계된 낚시 이런 영상들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순간부터 이미 전략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대개 이런 식입니다. "이 XX들 진짜 법 없이 사냐, 요즘 신종 사기 수법 공개" "카카오톡으로 접근하는 사기꾼들 실체 폭로"  사기꾼을 향한 분노와 욕설이 섞인 제목은 얼핏 '경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제목의 실제 기능은 따로 있습니다. 분노한 누군가가 내 편에 서서 뭔가를 폭로한다는 느낌, 그 감정적 동질감이 경계심을 낮추고 클릭을 유도합니다. 썸네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 사진, 흐릿하게 가려진 채팅창 캡처, '실제 피해자'라는 자막이 붙은 뒷모습. 표면적으로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형식이지만, 가려지고 흐려진 것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저 뒤에 뭔가 있다'는 느낌. 진정으로 피해자 보호가 목적이라면 굳이 그 사진을 썸네일에 쓸 이유가 없습니다. 모자이크라는 형식 자체가 "여기 자극적인 것이 있다"는 신호로 기능한다는 걸, 제작자도 알고 있습니다. "돈 드립니다"로 시작해 "사기입니다"로 끝나는 기만적 편집 영상 안으로 들어오면 본격적인 패턴이 시작됩니다. 초반에는 자극적인 자막과 함께 사기 수법을 마치 '돈 버는 꿀팁'인 양 소개합니다. "클릭 한 번에 5만 원 받는 법...

신호등은 건널 때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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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와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길다면 길고 넓다면 넓은 보행길이 펼쳐진다. 길은 확 트여 있고, 그 끝에 여의도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공원 바로 앞,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건널목도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저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면 나도 모르게 멀리서 신호등을 신경쓰게 된다. 희미하게 보이는 신호등의 불빛을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해 보려 애쓰게 되고, 혹시 지금 파란불이면 내가 그 타이밍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까, 아니면 빨간불로 바뀔까 머릿속이 바빠진다. 그러다 한 가지 단순한 방식을 깨달았다. “그냥 건널 때 보고 판단하자.” 멀리서 신호등이 바뀌는 타이밍을 예측하며 괜히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늦추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내가 건널목 앞에 도착했을 때 파란불이면 건너면 되고, 아니면 잠시 기다리면 그만이니까.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면 내 속도를 생각해서 판단하면 된다. 문제는 깜빡이기만 하는 경우다. 아니 문제랄 것도 없다. 핵심은 깜빡인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남들 다 건너고 나서 불이 바뀌는 상황. 나만 멍청하게 기다렸다는 그 상황에 남들이 혹시라도 비웃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뭘 고민하고 있나? 깜빡이는 건 이미 건너는 사람 빨리 건너라는 것이다. 물론, 한참을 깜빡이며 두 번 정도 건널 시간을 주는 배신(?)행위를 하는 신호등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라고? 내가 급한 게 아니라면 그냥 기다리자. 너무 급해서 건너야 한다면 지금 나는 무단횡단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건너라. 비겁하게 발 한 짝 걸치며 자위하지 말고.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나니 길이 한결 편해졌다. 굳이 예민하게 속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가 가는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 신호등은 건널 때 보면 된다.

피자가 맛은 있는데, 이 돈 내고 먹기에는 돈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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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피자를 시켜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형마트에서 파는 큰 피자를 사다 먹었을 것 같은데 오늘따라 일반 매장에서 시켜 먹어보고 싶었다.  대략 2만 6천 원. 비싼가? 비싸다. 나는 비싸다고 생각한다. 가격은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배달 온 피자를 보면서 더욱 비싸다고 생각했다.  보기도 좋고 맛도 있었다.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 이게 라지다. 아, 보통 라지가 이 정도 크기였나? 하도 대형마트 피자만 먹다 보니 크기가 상향 평준화가 되어 있다.  그래, 이 정도 크기가 라지라고 치자. 그래서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양에 이 정도 재료가 2만 6천 원은 비싸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그랬다. 피자는 아무리 봐도 거품이다. 왜 여기에만 이런 거품이 끼었나? 피자헛이 원흉이 아닐까?  개인 생각은 블로그에나 적으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적는다. 피자는 진짜 거품 같다. 무한정 가격이 오르는 치킨보다 더 돈이 아깝다.    건강하게 살자. 앞으로 피자는... 가끔만 사 먹자. 

내가 잘못하니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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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못하니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 욕심만 채우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그런 이기적인 사람일 리 없을 거라고 자위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맞다는 이유를 찾는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욕심만 가득해서, 이런 내가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AI를 표절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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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절은 오랜 시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남의 것을 베끼는 행위는 창의성이 결여되고 나태하며 부정직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렇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표절은 계속되었다. 표절이라는 행동 자체는 인간에게는 쉽고 효율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방의 동물이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선례를 따르고 모방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표절이라는 행위를 비난받지 않고 자기 발전에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다시 표절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봤다.  그냥 베낀다는 게 아니다. AI가 만든 것을 내 것이라고 말하라는 것도 아니다. 표절을 하라는 것이다. AI가 만든 것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내 것으로 채워 넣고, 들키지 않기 위해 가공하고 편집하여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그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인간에게 표절이 쉬운 일이라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AI가 만든 것을 표절하는 것은 비난받지 않으면서 새로운 내 것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AI가 합법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다.

그냥 밤양갱이 삐딱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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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바라는 건 밤양갱뿐이었다는 그 말이, 지금까지 네가 했던 모든 것이 나에게 의미 없었다고 들린다.  부드럽고 달콤한 공기의 진동을 말이라 포장하는 세상을 살다 보니, 죄다 삐딱하게 들리는 것 같다.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을 정도의 노력

 잘 써진 글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단어 하나하나는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적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양이다.  잘 써졌다는 것은 알겠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는 답답함, 그 이유를 찾아 배우기에는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유가 궁금하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는 싫다. 지금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부러워 하는 정도의 노력만 들이고 싶다.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그냥 말해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나쁜 일이 많을 때 복권을 사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좋은 꿈을 꾸었거나, 날씨가 좋거나, 특별한 날에는 복권을 샀다.  문득, 좋은 일이 있을 때 복권을 사는 게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든다. 그런 행운이 연속적으로 올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좋은 일이 한 번 왔으면 그 뒤는 평범하거나 나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오히려 나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 다음에는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수학적으로 본다면 그딴 거 다 의미 없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복권을 산다면 앞으로는 나쁜 일이 있을 때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커피에 물을 타나, 물에 커피를 타나

 커피믹스를 탈 때, 커피에 물을 타는 것과 물에 커피를 타는 것을 구분하는가? 둘을 구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나는 전자에 속한다.  무엇이 다른가 물어본다면 솔직히 말해서 타는 행위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잘 모르겠다.  둘을 구분한다고 커피 맛이 다른 것도 아니니 오히려 구분하지 않는 게 삶이 편안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