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고국이 낯선 나라가 되는 순간 — '리틀 LA'의 멕시코인들

멕시코시티 도심의 타바칼레라 거리에는 야자수가 늘어선 넓은 대로와 오래된 칸티나, 그리고 길거리에서 섞여 들리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있다. 그래서 이 동네는 '리틀 LA'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겉모습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곳은 미국에서 추방된 멕시코인들, 특히 국경 너머에서 수십 년을 살다가 고국이 오히려 낯선 나라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안식처가 됐다.

크리스토퍼 길 오르티스는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올해 6월, 로스앤젤레스로 출근하던 길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에게 붙잡혀 수갑을 차고 구금됐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 불법체류자로 살아온 수개월의 공포 끝에, 그는 오히려 안도했다고 말한다. "그때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제 됐다, 돌아가는 거다. 어깨에서 짐이 내려간 것 같았죠." 어린 시절 떠난 지 30년 만에 그는 아내와 두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툴룸에 내려져 칸쿤으로 향했지만 호텔 방에서 짐을 모두 도난당했고, 결국 가족이 있는 멕시코시티에 정착했다. "여기서 태어났는데도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요. 긴장됐죠." 출생증명서를 다시 발급받고, 신분증을 만들고, 일자리를 찾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사연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미국은 대규모 추방 작전을 벌여왔다. 그가 추방한 멕시코 국적자는 약 14만 5천 5백 명에 이른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이 추방 정책에 향후 2년 반 동안 약 2천 6백 89억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납세자 1인당 평균 2천 3백 58달러, 우리 돈으로 약 3백 35만 원의 부담이다. 이 돈이면 1억 1천 8백만 명에게 식량 지원을, 1천 2백만 명에게 의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그런데 이 정책의 그늘은 숫자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AP 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현역 군인의 배우자와 부모 50여 명을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수십 년간 초당적 합의로 보호돼 온 군인 가족까지 추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민 단속 작전 과정에서 최소 9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도 있다. ICE 요원에게 전기충격 장갑을 보급하는 계획까지 추진되면서, 인권단체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나는 이 사건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를 본다. 추방은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정작 돌아간 사람들에게 고국은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오르티스처럼 수십 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멕시코는 기억 속의 나라일 뿐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이방인이었고, 이제 고국에서도 이방인이 됐다. '리틀 LA'라는 이름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추방된 사람들이 고향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미국의 거리를 흉내 낸 동네에 모여드는 것이다.

물론 이 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국인을 식별해 비자를 취소하고 추방하는 것은 국가의 권리라는 주장, 그리고 불법체류는 법 위반이라는 원칙론도 설득력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비자는 권리가 아닌 특권"이라고 강조한다. 이 논리는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그 원칙이 적용되는 방식이 문제다. 범죄 기록이 없는 사람들, 수십 년간 미국에서 가족과 삶을 일궈온 사람들, 심지어 군인 가족까지 한꺼번에 '추방 대상'으로 묶이는 순간, 그 정책은 원칙이 아니라 집단적 처벌로 변한다.

나는 추방 정책의 비용을 단지 돈으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2천 6백 89억 달러라는 숫자 뒤에는, 오르티스처럼 어깨에서 짐이 내려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온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간 '고국'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낯선 적응의 시간이 있다. 정책의 효율성과 인도주의는 반드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균형을 잡는 일이, 지금 미국에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타바칼레라의 야자수 아래에서, 오르티스는 이제 '뉴 코미엔소스' 같은 단체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다시 만들고 일자리를 찾고 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그는 고국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작이 자발적인 귀환이 아니라 추방의 결과라는 사실은, 그가 걸어가는 리틀 LA의 거리 어딘가에 여전히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고국이 낯선 나라가 되는 순간, 사람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 불안정함이야말로 이 시대의 이민 정책이 남긴 가장 깊은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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