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공화당이 이기면 5천 달러' — 표가 된 국가, 사라진 선거

텍사스 댈러스의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지난 9일 수요일 저녁. 트럼프가 마이크 앞에 서서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지키면 미국 성인 시민 전원에게 5천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장에선 "USA, USA" 연호가 터져 나왔다. 그가 내건 이름은 '트럼프 배당금'(Trump Dividend)이었다. "우리가 너무 잘 해냈고 나라가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어서, 이 약속은 나만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숫자다. 미국 성인은 약 2억 7천만 명. 대략 1조 2천억에서 1조 3천억 달러가 드는 계산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지급 방식도, 법적 근거도, 시점도 없다. 유일한 조건은 "미국 안에서 써야 한다"는 것 — "캐나다 가서 쓰지 말라"고 했다. 이 말 한 줄에 공약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내수 부양책이다. 세금을 거둬 나눠주는 게 아니라, 표를 사고, 그 돈으로 미국 경제를 지탱하라는 하나의 거래에 가깝다.

트럼프의 발언이 나온 지 약 한 시간 만에 부통령 JD 밴스가 나서 고소득층은 제외 가능성이 있다고 흘리고, 관세 수입을 재원으로 쓰자는 의견을 냈다. 민주당은 "실현 불가능한 빈 공약" "매표"라고 일축했다. 법조계에서는 이게 유권자 매수에 해당하는 불법인지, 아니면 합법적인 감세 약속의 변형인지 갈린다. 말 그대로 '합법·불법'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논쟁 자체가 우리가 이미 어디쯤 와 있는지를 말해 준다. 국가가 개인에게 조건을 걸고 돈을 준다는 행위가, 이제는 "법으로 가능한지"를 따지는 단계가 됐다는 것. 어느 쪽 대답이 나와도 그 사실은 어둡지 않다.

여기서 내가 보는 핵심은 '배당금'이라는 단어의 선택이다. 트럼프는 국가를 기업으로, 시민을 주주로, 정부의 성과를 이익으로, 투표를 배당 청구권으로 바꿔 그린다. '주주가 배당을 받는 건 당연하다'는 상식의 힘을 민선 거버넌스에 이식한 것이다. 그런데 어휘의 달콤함 뒤에, 이 프레임은 두 가지를 동시에 지운다. 첫째, 국가는 기업이 아니라 시민의 공동체라는 점. 둘째, '공화당의 승리'와 '미국의 번영'이 왜 같은 것인지 — 그 전제에 그 누구도 의문을 달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이기면 너희도 이긴다"는 대목은 그냥 유세가 아니라, 정당과 국가를 하나로 묶는 진술이다. 패배하면 지급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공화당에 투표하라"가 아니라 "공화당에 투표하면 받는 것"이 된다. 선거가 선택에서 조건부 거래로 바뀌는 순간이다.

시간의 배경도 보아야 한다. 미국은 기록적 재정적자(연간 약 1조 8천억 달러)와 인플레이션, 인기 없는 이란 전쟁, 급등한 에너지 가격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민주당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당은 중간선거에서 통상 의석을 잃는다. 트럼프는 "내 이름이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해달라"며 이번 선거를 사실상 자신의 재신임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전당대회장 곳곳에는 빈자리가 보였고, 주요 방송사들 중 폭스뉴스만이 처음부터 연설을 생중계했으며, 유튜브 동시 시청자는 수천 명 수준에 그쳤다. '우리가 너무 잘 해냈다'는 연설과 텅 빈 객석은 서로를 조롱한다. 이 대비는 우연이 아니다. 표를 사려면 먼저 들어올 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 표 자체가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래도 반박의 목소리는 공정하게 들어야 한다. 지지 측에서 보면,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장의 생활 부담을 덜어 주는 실질적 조치로 보일 수 있다. 관세 수입을 재원으로 한다는 제안은 트레이드오프를 명시하고자 하는 의도다. '배당금'이라는 표현이 무조건 나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쪽 논리도 있다. 하지만 그 타당성은 재원이 지속 가능하고, 지급이 개인의 투표 행동과 단절되어 있을 때만 힘을 가진다. '공화당이 이기라는 조건'이 처음부터 깔려 있는 이상, 이 공약이 복지로 읽힐 수 있는 여지는 한쪽 편이 선거에서 이겼을 때에만 열린다. 그 자체로 문제다.

장기적으로, 이것은 그냥 한 번의 유세 수사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 자원이 정당의 충성에 조건부로 연결되는 패턴은 한 번 열리면 반복되기 쉽다. 이번에 5천 달러, 다음에 또 더. 정치가 이상(理想)이 아니라 거래로 소통되는 게 정착되면, 시민은 시민이 아니라 단골 고객이 되고, 선거는 심판이 아니라 경매가 된다. 5년, 10년 뒤 이 공약의 의미는 실행 여부가 아니라 —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지가 될 것이다.

댈러스의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는 아마 이 공약의 가장 솔직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표를 돈으로 부르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 돈을 받을 표는 줄어든다. 국가가 무언가를 "준다"고 할 때, 이미 누군가는 그 대가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걸 시민이 깨닫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5천 달러가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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