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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생각] 손님이 오기 전에 — 힘룽 히말 14피트 아래의 사람들

9월 27일 일요일 아침. 네팔 북쪽 마낭 지역, 해발 7,126미터 힘룽 히말 봉우리 아래. 산을 오르기 전에 짐을 풀고 자는 텐트 마을, 베이스캠프가 있었다. 그날 아침 산이 눈을 쏟아냈다. 눈사태(쌓여 있던 눈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일)였다. 구조대 말로는 쌓인 눈이 4미터(14피트)가 넘었다. 텐트가 통째로 눈 속에 들어갔다. 그 안에 열여섯 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등반가가 아니었다. 밥을 짓는 요리사, 주방 일을 돕는 사람들, 그리고 등반로에 밧줄을 매는 산악 안내인들이었다. 정작 산을 오르려던 손님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닷새에서 엿새 뒤에 온다고 했다. 나흘 뒤인 10월 1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여성 등반팀 열네 명이 이 산을 오르려고 카트만두에 도착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 사고를 '등반 사고'라고 부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돈을 받고 산을 올라 주는 방식(상업 등반)은 등반가가 혼자 산에 오르는 일이 아니다. 먼저 노동자들이 올라가 길을 치우고, 밧줄을 매고, 텐트를 세우고, 밥을 짓는다. 그 준비가 끝난 다음에야 돈을 낸 손님이 올라온다. 이번에 눈에 묻힌 사람들은 바로 그 준비를 하러 두 주 전에 카트만두에서 이곳으로 올라온 노동자들이었다. 네팔 관광부는 요리 인력 열네 명과 안내인 두 명이 눈에 묻혔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보도마다 실종자 숫자가 조금씩 달랐는데,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의 연락이 다시 이어지면서 숫자가 정리된 것이다.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회사 생활과 다르다. 산악 안내인은 두 달 남짓 일하고 3천에서 8천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그 돈으로 1년을 산다. 산에서 내려오면 그 시즌 수입은 0이 된다. 그러니 "위험하니까 내려오자"는 결정은 목숨을 지키는 대신 그해 생활을 포기하는 결정이 된다. 죽은 뒤의 보상도 작다. 네팔 정부가 정한 최소 보험액은 안내인과 높은 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200만 루피(네팔 돈), 베이스캠프 인력이...

[지오의 생각] 빙하가 무너진 날 — 네팔 홍수 1,300명, 그리고 우리가 놓친 것

8월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가 맞닿은 히말라야의 어느 산비탈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무너져 내렸다. 지진이 아니라 빙하가 무너진 것이었다. 그 충격은 지진계에 규모 5.2로 기록될 만큼 컸고, 얼음과 바위와 진흙이 뒤섞인 벽이 계곡을 휩쓸며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날 이후 네팔에서는 최소 1,380명이 숨지고 5,500명이 넘는 사람이 실종됐다. 13일째 되는 월요일, 네팔 정부는 국가 애도일을 선포했다. 힌두 전통에서 애도 기간의 마지막 날, 가족들이 집에 머물며 조문객을 맞는 날이다. 이 재난을 보도하는 매체들은 대부분 같은 숫자를 반복한다. 사망자 1,300여 명, 실종자 5,500여 명, 수력발전소 터널에 갇힌 노동자 600여 명. 그리고 구조대가 9일, 10일 만에 터널 속에서 중국인 노동자와 네팔 여성을 살려낸 '기적'도 전해진다. 225미터 깊이의 물에 잠긴 터널에서 구조된 루하이타오는 구조대의 횃불이 비칠 때마다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 한 줄기 빛이 그를 덮쳤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이 재난을 보면서, 숫자와 기적 뒤에 가려진 더 큰 진실을 짚고 싶다. 이번 홍수의 원인은 지진이 아니라 빙하 붕괴 였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를 '빙하 붕괴(glacial collapse)'로 명확히 규정했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으면서 불안정해진 얼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과학자들은 히말라야 빙하가 급속히 녹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이번 재난은 그 경고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재난이 수력발전소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점이다.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지어진 터널에 6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갇혔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발이, 정작 기후변화가 ...

[지오의 생각] 225미터 어둠 속 10일 — 히말라야가 던진 질문

225미터 어둠 속 10일 그는 225미터 깊이의 어둠 속에서 열흘을 버텼다. 수력발전소 터널, 얼음과 바위와 진흙이 입구를 막아버린 뒤로는 하루가 몇 분처럼, 몇 분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중국인 노동자 루하이타오 는 구조대의 손전등 불빛이 터널 안을 스칠 때마다 목청껏 소리쳤다고 훗날 중국 국영방송에 말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목소리는 아무 곳에도 닿지 않았다. 마침내 한 줄기 불빛이 그를 쓸고 지나갔고, "믿을 수 없었다"는 그가 구조대에 안겨 나왔다. 그의 구조는 이번 재난이 남긴 몇 안 되는 '기적'이다. 같은 주, 같은 강 상류의 다른 터널에서 네팔인 노동자 두 명도 열흘 만에 각각 살아 돌아왔다. 합동 구조에는 네팔군과 한국의 재난 전문가들이 힘을 보탰고, 저체온증 외에 뚜렷한 외상이 없는 그는 헬기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이른바 '희망'이라는 감정이 열흘 만에 처음으로 터널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 구조 장면을 뒤에서 돌아봐야 한다. 이 재난은 8월 26일, 히말라야의 한 빙하가 붕괴하며 시작됐다. 얼음덩어리와 물, 바위가 강을 따라 계곡 전체를 쓸어 내려갔다. 사망자는 1,30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아직도 5,000명에 가깝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습한 기후 속 분해가 시작되자 얕은 무덤에 급히 묻히고 있다. 도로와 다리, 학교와 마을 전체가 사라졌고, 수백 명이 여섯 개 수력발전 단지의 터널 안에 갇혀 있을 것으로 당국은 추산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일반 보도가 좀처럼 던지지 않는 질문을 한다. 왜 수력발전소가 이런 불안정한 빙하 계곡에 지어졌는가. 답은 낯익은 경제 논리에 있다. 네팔은 전력 수출을 원했고, 중국은 투자와 에너지 안보를 원했다. 양쪽의 유인은 또렷했다. 다만 기후 리스크 평가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이 사건은 자칫 '자연재해'로만 읽히지만, 실은 개발 모델과 기후 변화라는 두 힘이 정확히 같은 좌표에서 부딪힌 사건이다. 사망자 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