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빙하붕괴인 게시물 표시

[지오의 생각] 빙하가 무너진 날 — 네팔 홍수 1,300명, 그리고 우리가 놓친 것

8월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가 맞닿은 히말라야의 어느 산비탈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무너져 내렸다. 지진이 아니라 빙하가 무너진 것이었다. 그 충격은 지진계에 규모 5.2로 기록될 만큼 컸고, 얼음과 바위와 진흙이 뒤섞인 벽이 계곡을 휩쓸며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날 이후 네팔에서는 최소 1,380명이 숨지고 5,500명이 넘는 사람이 실종됐다. 13일째 되는 월요일, 네팔 정부는 국가 애도일을 선포했다. 힌두 전통에서 애도 기간의 마지막 날, 가족들이 집에 머물며 조문객을 맞는 날이다. 이 재난을 보도하는 매체들은 대부분 같은 숫자를 반복한다. 사망자 1,300여 명, 실종자 5,500여 명, 수력발전소 터널에 갇힌 노동자 600여 명. 그리고 구조대가 9일, 10일 만에 터널 속에서 중국인 노동자와 네팔 여성을 살려낸 '기적'도 전해진다. 225미터 깊이의 물에 잠긴 터널에서 구조된 루하이타오는 구조대의 횃불이 비칠 때마다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 한 줄기 빛이 그를 덮쳤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이 재난을 보면서, 숫자와 기적 뒤에 가려진 더 큰 진실을 짚고 싶다. 이번 홍수의 원인은 지진이 아니라 빙하 붕괴 였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를 '빙하 붕괴(glacial collapse)'로 명확히 규정했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으면서 불안정해진 얼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과학자들은 히말라야 빙하가 급속히 녹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이번 재난은 그 경고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재난이 수력발전소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점이다.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지어진 터널에 6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갇혔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발이, 정작 기후변화가 ...

[지오의 생각] 225미터 어둠 속 10일 — 히말라야가 던진 질문

225미터 어둠 속 10일 그는 225미터 깊이의 어둠 속에서 열흘을 버텼다. 수력발전소 터널, 얼음과 바위와 진흙이 입구를 막아버린 뒤로는 하루가 몇 분처럼, 몇 분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중국인 노동자 루하이타오 는 구조대의 손전등 불빛이 터널 안을 스칠 때마다 목청껏 소리쳤다고 훗날 중국 국영방송에 말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목소리는 아무 곳에도 닿지 않았다. 마침내 한 줄기 불빛이 그를 쓸고 지나갔고, "믿을 수 없었다"는 그가 구조대에 안겨 나왔다. 그의 구조는 이번 재난이 남긴 몇 안 되는 '기적'이다. 같은 주, 같은 강 상류의 다른 터널에서 네팔인 노동자 두 명도 열흘 만에 각각 살아 돌아왔다. 합동 구조에는 네팔군과 한국의 재난 전문가들이 힘을 보탰고, 저체온증 외에 뚜렷한 외상이 없는 그는 헬기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이른바 '희망'이라는 감정이 열흘 만에 처음으로 터널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 구조 장면을 뒤에서 돌아봐야 한다. 이 재난은 8월 26일, 히말라야의 한 빙하가 붕괴하며 시작됐다. 얼음덩어리와 물, 바위가 강을 따라 계곡 전체를 쓸어 내려갔다. 사망자는 1,30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아직도 5,000명에 가깝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습한 기후 속 분해가 시작되자 얕은 무덤에 급히 묻히고 있다. 도로와 다리, 학교와 마을 전체가 사라졌고, 수백 명이 여섯 개 수력발전 단지의 터널 안에 갇혀 있을 것으로 당국은 추산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일반 보도가 좀처럼 던지지 않는 질문을 한다. 왜 수력발전소가 이런 불안정한 빙하 계곡에 지어졌는가. 답은 낯익은 경제 논리에 있다. 네팔은 전력 수출을 원했고, 중국은 투자와 에너지 안보를 원했다. 양쪽의 유인은 또렷했다. 다만 기후 리스크 평가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이 사건은 자칫 '자연재해'로만 읽히지만, 실은 개발 모델과 기후 변화라는 두 힘이 정확히 같은 좌표에서 부딪힌 사건이다. 사망자 상당...

[지오의 생각] 영상이 사라진 참사: 티베트 홍수의 미궁과 정보의 값

수요일 아침, 히말라야 국경에서 낮은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규모 5.2의 지진으로 감지됐다가, 며칠 뒤에야 진짜 정체가 드러난 그 충격은 빙하가 무너져 내린 산사태의 파문이었다. 네팔과 티베트 접경의 기롱 항구 일대, 보테 코시 강과 렌데 콜라 강이 거대한 물과 진흙, 얼음 덩어리를 쏟아내며 마을과 도로와 교량을 휩쓸었다. 순례자와 트레커들이 모여들던 산악 지대는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됐다. 그런데 이 같은 참사를 다룬 보도에는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BBC는 지난 주말 중국이 티베트 홍수 관련 영상을 국내 인터넷에서 통제하고 있다 고 보도했다. 소셜미디어로는 관련 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있지만, 정작 중국 국내에서는 이 참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가 차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대규모 구조 작업을 지시했다는 관영 프레임과 별개로, 피해 규모는 지금도 미궁으로 남아 있다. 숫자가 스스로를 반박하고 있다. 지난 수요일 첫 이슈 때 사망 150여 명, 이튿날 356명, 359명, 543명, 584명으로 치솟았고 실종자는 910명에서 2천500명 육박까지 잇따라 늘어났다. 네팔 경찰은 상류 자연댐 호수가 범람해 구조가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됐다고 전했고, 이틀 만에 티베트 쪽 댐이 또 무너져 구조대와 주민이 대피하는 혼란이 벌어졌다. 이렇게 매체마다 다른 수치는 언론의 불성실이라기보다, 이 지역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고 실시간 집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적십자사는 최소 9만 3천 명이 긴급 구호를 필요로 한다고 집계했다. 이번 사건은 기후 변화라는 보다 무거운 줄기에 꽂힌 가지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번 참사가 지진이 아니라 히말라야 빙하의 급격한 융해로 인한 빙천(氷川) 붕괴라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가 얼어 있던 암반과 얼음을 녹여, 마른하늘 아래에서도 터지는 새 폭탄을 만들어 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극한 기상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내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싶...

[지오의 생각] 빙하가 무너진 날, 히말라야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

수요일 아침, 네팔과 티베트 접경의 한 계곡에서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트레커들은 배낭을 메고, 순례자들은 카일라스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전 8시 37분, 지진계가 흔들렸다. 규모 5.2에 해당하는 충격이 감지됐다. 그리고 3분 뒤, 벽처럼 밀려온 물이 계곡을 통째로 삼켰다. 처음엔 모두가 지진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지진이 산사태를 일으키고, 그게 홍수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다른 결론을 내놨다. 이 충격은 지진이 아니라 '빙하 붕괴'였다. 히말라야의 빙하 일부가 통째로 무너져 계곡 바닥에 부딪히면서, 그 충격이 마치 규모 5.2의 지진처럼 기록된 것이다. 무너진 얼음과 바위가 보테코시 강으로 쏟아져 들어가며 순식간에 거대한 물벽을 만들었다. 그 물벽은 마을을, 다리를, 도로를, 수력발전소를 휩쓸었다. 40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가 사라졌고, 수백 채의 집이 진흙에 묻혔다. 사망자는 36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1,400명을 넘어섰다. 그중엔 인도인 288명, 미국인 90명, 중국인 100명, 그리고 한국인 9명이 포함돼 있다. 30여 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순례와 트레킹을 위해 그 계곡을 찾은 사람들, 그저 아름다운 산을 보러 온 사람들. 이 사건이 특히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재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과학자들은 이번 붕괴가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융해 가속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의 빙하는 지구 어디보다 빠르게 녹고 있다. 그리고 녹은 물이 쌓여 만든 빙하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산 위에 매달려 있다. 실제로 이번 사고 지점 상류에는 빙하호가 55개나 분포해 있다는 위성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같은 지역에서도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일어났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짚고 싶다. 이번 참사를 두고 일부에서는 '지진 때문'이라는 설명이 먼저 나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