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자발적 이주'라는 이름의 강제 추방 — 가자지구를 둘러싼 언어의 전쟁
이스라엘 국방장관 이스라엘 카츠는 지난주 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스라엘은 "해상으로, 항공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구상을 지지하는 것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류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주,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이탈 710"이라는 이름의 7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1년 안에 25만 명, 3년 안에 110만 명, 7년 안에 약 190만 명의 가자 주민을 내보내겠다는 숫자와 일정이 담긴 소책자였다. 그는 이주가 "자발적"이라고 강조했고, 재선에 성공하면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할 전담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두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총선이 있다. 다음 달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극우 연정은 팔레스타인 혐오 선동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벤그비르는 지난달에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매일 30~40명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해 국제사회의 뭇매를 맞은 인물이다.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는 서안지구를 넘어 자국 영토 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자는 구상까지 꺼냈다.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연합이 야당과 동석을 다투는 상황, 극우 표심을 겨냥한 공약 경쟁이 이주 계획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숫자나 일정이 아니라, 그 계획을 감싸고 있는 언어다. "자발적 이주"라는 표현은 강제 추방을 정당화하는 가장 교묘한 장치다. 국제법상 강제 이주는 명백한 위반이지만, "자발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 행위의 성격이 흐려진다. 문제는 이 "자발성"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느냐다. 가자지구에서 폭격과 철거와 살인이 계속되는 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떠나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제된 결정이다. 폭력이 선택지를 좁혀 놓은 상태에서의 선택은 선택이 아니다. 이 언어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추방을 실행하는 쪽은 "그들이 스스로 떠나기로 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말을 듣는 국제사회는 강제성의 증거를 요구하느라 정작 핵심을 놓치게 된다.
더 날카롭게 짚어야 할 지점은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가자지구 인구의 강제 이주·추방·강제 이전을 위한 어떤 계획이나 제안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성명은 카츠와 벤그비르를 직접 비난하지 않았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대한다"와 다르다. 반대는 행동을 요구하지만, 지지하지 않음은 그저 거리를 두는 태도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가자 인구 재배치를 옹호했고, 국제사회의 반발과 수용국 부재로 철회했다. 카츠 장관이 "트럼프가 취소하지 않고 보류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 구상이 미국의 최고위층에서 완전히 접힌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는 카드로 남아 있음을 시인하는 셈이다. 미국이 이주 계획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 극우는 "미국이 필요하며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카츠의 말처럼 언제든 재개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사건이 드러내는 것은 이스라엘 극우의 잔혹성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더 구조적인 문제는, 이렇게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하는 구상이 총선용 선동으로 치부되며 실제 정책의 경계선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벤그비르의 계획은 "자발적 이주"라는 이름 아래 이주 전담 부처 신설, 해상·항공 수송 체계 구축 같은 구체적 행정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한 번 제도화된 추방 장치는 선거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이 세계 최초로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인정한 것도 가자 주민 이주를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샀다. 이 모든 조각들이 맞물려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 이는 일시적 선동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실행 가능성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아랍권의 반응은 단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요르단,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 인도네시아 8개국 외무장관은 공동 성명을 내고 강제 이주가 국제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며 중동 평화 노력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연합과 하마스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반대의 한계도 분명하다. 이집트는 자국 영토를 통한 이주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고, 수용할 준비가 된 국가는 사실상 없다. 국제사회가 "반대한다"고 말하는 동안, 그 반대가 구체적 제재나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 극우의 계산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이 사건을 단순한 극우의 과격한 발언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 강제 추방을 정당화하는, 그리고 그 정당화가 국제사회의 모호한 반응 속에서 조금씩 제도화되는 과정이다. "자발적 이주"라는 말이 통용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진짜 질문은 이스라엘 극우가 얼마나 잔혹한가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반대한다"로 바꿀 의지가 있는가다. 가자지구의 하미드 교차로에서 드론 공습으로 유세프 아킬라와 그의 어린 딸 와파가 숨진 일요일 밤, 그 이름 없는 죽음들이 "자발적 이주"라는 말로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국 언어를 지키는 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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