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옷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의상이 예술이 될 때 — 밥 매키를 기리며

오스카 시상식 무대에서 여배우가 머리에 깃털 모호크를 쓰고 배를 드러낸 채 나타났을 때, 회장은 술렁였다. 1986년, 셰어(Cher)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레드카펫을 걸었다. 그 의상을 만든 사람이 바로 밥 매키(Bob Mackie)다. 그는 지난 9월 14일,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퀸의 술탄'이라 불렸던 그는 셰어, 티나 터너, 돌리 파튼, 엘튼 존 등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들의 몸을 감췄다. 토니상 하나, 에미상 아홉 개, 오스카 후보 세 번. 수치로만 보면 화려했던 경력의 옆면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남긴 것은 숫자보다 훨씬 큰 것, 즉 '무대 의상'이라는 장르를 단순한 장식에서 예술의 자리로 끌어올린 일이다.

그런데 그 1986년의 모호크 의상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가 유행과 패션을 대하는 태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흔히 이 룩은 '복수의 드레스'로 회자된다. 매키와 2024년 다큐멘터리에서 셰어는 직접 말했다. '마스크'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거라 모두가 확신했지만, 그해 후보 명단에서 빠졌다. 그래서 그날 밤은 일종의 복수를 위해 차려입었다고. 언론은 이 서사를 좋아한다. 무시당한 여배우가 화려한 옷으로 응징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 의상은 '가장 대담했던 레드카펫 룩'으로 영원히 각인됐다.

하지만 복수라는 프레임만으로는 매키와 셰어가 만든 일을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모호크 깃털과 드러난 배는 반항이 아니라, 서로의 재능을 알아본 두 예술가의 합작이었다. 셰어는 당시 헐리우드가 여배우에게 강요하던 '참한' 규범을 거부할 용기와 몸을 가졌고, 매키는 그것을 옷으로 표현할 상상력과 기술을 가졌다. 의상은 단지 화려함의 극치가 아니라, '나는 이 규칙에서 빠져나간다'는 선언이자, 스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패였다.

나는 매키가 패션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천재 중 하나라고 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옷을 '입는 사람'에 맞추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점이다. 카롤 버넷의 유쾌하고 괴상한 코미디 의상에서부터 셰어의 팔등신을 강조하는 이브닝 가운까지, 매키의 설계는 몸의 움직임과 캐릭터의 성격을 동시에 읽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옷은 그저 이쁘기보다, 입는 사람이 한 뼘 더 크게 보이게 했다.

여기서 양측이 동시에 놓치는 지점이 있다. 진보적 진영은 그를 '규칙을 깬 혁신가'로, 보수적 진영은 '과거 황금기의 화려함을 남긴 장인'으로 기억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진짜 핵심을 말해주지 않는다. 매키가 보여준 것은, 우리가 옷을 단지 '입고 벗는 물건'이나 '소비되는 트렌드'로만 대하는 오늘날의 태도가 얼마나 빈곤한가다. 그에게 의상은 정체성을 입히는 일이었다. 인물의 공포와 자부심, 그리고 시대의 목소리를 한 벌의 옷에 응축하는 것이었다.

그의 옷은 오늘도 입혀진다. 애냐 테일러조이, 밀리 사이러스, 젠데이아가 그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2024년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서 젠데이아가 셰어를 기리는 행사에 매키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일은 우연이 아니다. 40년 전 자신을 세상에 각인시킨 스타를, 그리고 그 옷을 만든 장인을, 한 세대가 지나 다시 불러낸 것이다.

레드카펫은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스타들은 디자이너의 손을 빌려 자신의 브랜드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몇 시간 만에 사진으로 세상에 퍼지고, 하루 만에 잊히는 소비재가 된다. 매키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가 곱씹을 질문은 이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옷을 입고 있는가, 아니면 옷에게 입혀지고 있는가. 그가 남긴 천 벌의 옷은 그 질문에 단 하나의 대답을 반복한다. 진짜 예술은 결국, 그것을 입는 사람이 더 자유로워지도록 돕는다.

그가 꿈꾸던 것, 곧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디자이너가 되는 일은 이뤄졌다. 그 이상으로, 그는 우리가 옷을 보는 눈까지 바꿔놓았다. 깃털 모호크 하나로 시작된 그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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