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방화벽이 무너지기 전에, 독일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

2026년 9월, 독일 동부의 작은 주에서 선거가 벌어졌다. 이곳은 독일 전체 인구의 2% 조금 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이 선거 결과가 독일과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다. 반이민(외국인을 나라 안에 들이지 말자는 입장)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매우 보수적인 쪽) 정당이 40%가 넘는 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즉 나치 정권이 끝난 뒤 80년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극우 정당은 국적이 '독일을 위한 대안'이다. 줄여서 AfD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외국인 이민을 많이 막고, 러시아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정당이 동부 지역에서 이렇게 큰 힘을 얻은 것은 아주 오래전 일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이건 아주 최근, 몇 주 전에 일어난 일이다.

독일의 총리(나라의 지도자)인 메르츠 씨는 이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집권한 지 채 2년도 안 됐는데 지지율이 계속 떨어졌다. 반면 극우 정당은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 되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 가까이가 극우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자 '총리를 갈아치우자'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독일어로 '칸츨러타우슈'라고 하는데, '총리 자리 바꾸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독일의 8개 주 정부 수장들이 한꺼번에 나섰다. 그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 바꾸기가 아니라, 국민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것"이라며 메르츠 씨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물러나면 당은 더 흔들릴 거라는 뜻에서다. 그리고 그 주말에 두 개 주에서 또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지지는 '총리를 바꿔야 한다'는 소문을 진정시키려는 손길로 읽혔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진짜로 눈여겨보는 것은 극우 정당이 커지는 것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정당에 표를 주는지, 그리고 기존 정당들이 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독일의 민주주의에는 '방화벽'이라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극우 정당과는 절대 손을 잡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치 아픈 역사 때문에 모든 정당이 이 원칙을 지켜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그 방화벽이 처음으로 금이 갔다. 극우 정당과 손잡는 게 꺼려지는 일부 정당이 "연합 정부를 만들지는 않아도,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협력할 수 있다"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극우 정당 스스로는 "민주주의라면 우리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메르츠 씨는 이에 맞서 극우 정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극우 정당의 핵심 공약인 '귀환' 정책이 "사실상 인종 청소(특정 출신의 사람들을 나라에서 내보내려는 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극우 정당의 이민 정책이 현실이 되면 독일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국민 6명 중 1명이 외국 여권을 가진 기술자(전문 직업을 가진 노동자)인데, 그들을 다 내보내면 병원도 요양원도 식당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극우 정당은 그 말이 명예를 훼손한다며 메르츠 씨를 고소했다.

이 상황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메르츠 씨가 비판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까지 밀렸을까? 정작 극우 정당이 커진 것은 그가 극우를 몰아붙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기존 정당들이 국민의 불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경제가 어렵고, 이민 문제로 갈등이 생기고, 국민은 "우리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 그 답답함이 극우 정당으로 표를 몰아간 것이다.

여기서 숫자의 함정이 하나 있다. 극우 정당이 43.8%를 얻은 것은 분명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 말은 거꾸로 56%의 사람들이 그 정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르츠 씨도 이 점을 짚었다. "다수의 표를 놓치셨다"고. 그런데 문제는, 극우에 반대하는 56%의 표가 하나도 뭉치지 못하고 갈라졌다는 것이다. 표가 분산되니 극우가 1위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과, 사람들이 쉽게 읽는 뜻은 다르다.

진짜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다. 내 생각에 5년, 10년 뒤를 보면 가장 큰 변수는 극우 정당 자체가 아니라 기존 정당들의 태도다. 방화벽이라는 약속이 계속 지켜질까? 지금은 "정책마다 협력"이라는 반쪽짜리 타협이 나오고 있다. 이건 조금씩 벽돌을 빼는 것과 같다. 오늘은 하나, 내일은 둘. 언젠가 벽 전체가 무너지는 순간, 나치 이후 줄곧 지켜온 "극우와는 안 한다"는 독일만의 원칙이 사라진다. 그것이 유럽 전체에 어떤 신호로 전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메르츠 씨가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극우를 입으로는 막으면서 정작 국민이 외치는 고통은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결국 그 극우를 더 키운다는 사실이다. 그게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독일은 지금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국민의 말을 정말 듣고 있었는가." 그 질문의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 방화벽은 계속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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