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11대 1, 아무도 답을 못 한 질문

9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미국 북동쪽 끝에 있는 주)의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습니다. 판결이 나서 끝난 게 아닙니다. 아무 결론도 없이 끝났습니다. 열두 명의 배심원이 일주일에 걸쳐 마흔 시간 가까이 이야기했지만, 끝까지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배심원은 재판에 참여해 유죄와 무죄를 정하는 일반 시민입니다. 판사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결론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그 열두 명이 11대 1로 갈렸습니다. 열한 명은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고, 한 명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사건은 202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린지 클랜시는 자기 집에서 세 자녀를 숨지게 했습니다. 다섯 살, 세 살, 생후 여덟 달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재판에서 다툰 것은 그녀가 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자기 행동이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가였습니다. 여섯 주 동안 의사와 전문가들이 증언대에 섰고,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병에는 이름이 있는데, 정작 의사들이 쓰는 진단 기준 책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산후 정신증(아이를 낳은 뒤 드물게 찾아오는 심한 정신병)은 출산 1,000건당 한두 명꼴로 생깁니다. 환청과 망상(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증상)이 나타나고, 불면과 불안이 함께 옵니다. 그런데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가 만드는 진단 기준 책, 이른바 DSM에는 이 병이 따로 실려 있지 않습니다. 있다 해도 출산 뒤 네 주 안에 시작된 우울증이라는 단서 조항 정도입니다. 클랜시가 아팠던 시기는 막내를 낳고 여덟 달쯤 뒤였습니다. 책의 기준으로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넉 달 동안 정신건강 관련 병원과 상담처를 여섯 곳 넘게 찾았고, 처방전은 서른 장이 넘었습니다. 응급실에도 갔고, 스스로 병원에 입원했고, 자살예방 전화를 두 번 걸었습니다. 그렇게 도움을 청했는데도, 아무도 그 병에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습니다.

법정에서는 다른 질문이 오갔습니다. 검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약과 저녁거리를 사오라고 해서 집을 비우게 했고, 그 사이에 아이들을 숨지게 했다. 우연이 아니라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변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아이들을 죽이라는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 사이에서 법이 물은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합리적 의심 없이 확신하는가. 합리적 의심이란 증거를 다 봐도 정말 그런가 싶은 의문이 남는 상태입니다. 조금이라도 남으면 유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재판에서 그 의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은 검찰에게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나는 아팠다를 증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검찰이 아니었다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열한 명은 검찰이 그걸 해내지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9월 17일, 남은 한 명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말은 이랬습니다. 나는 어떤 의심도 없었다. 물리적 증거와 주요 증인, 검찰이 제시한 것을 보면, 그녀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획했다는 증거로 충분했다. 그는 자기 이름이 인터넷에 퍼진 뒤 심한 비난을 받았고, 지금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그가 회의 중에 합리적 의심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것은 배심원 대표의 말입니다. 다른 배심원들도 그가 휴대전화만 보거나 근거를 대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그는 다른 배심원 여덟 명이 첫날부터 결론을 정해놓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다른 사람의 주장이고, 어느 쪽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열두 사람이 함께 결론을 못 낸 게 아니라, 한 사람이 버텼고, 그래서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재판이 무효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인터넷에 빠르게 퍼졌고, 그의 변호사는 그를 두고 미국의 영웅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반대편에서는 그를 향한 원망이 쏟아졌습니다. 대통령까지 그 사건을 언급하며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보탰습니다. 양쪽 모두 이 사건을 자기 이야기의 재료로 씁니다. 누군가는 차가운 엄마를, 누군가는 여성을 외면한 사회를 팝니다. 관심이 곧 돈이 되는 구조에서, 가장 조용해야 할 배심원실이 무대가 됐습니다.

이 소란 속에서 가장 정확한 말을 한 사람은 아마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유족으로서 검찰의 첫 증인이었고, 전처를 용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습니다. 그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랬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음모론(근거 없이 뒤에서 꾸민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은 아이들의 기억에 깊은 상처를 주고, 산모의 정신건강 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고.

나는 이 사건의 진짜 피고는 린지 클랜시 한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세상이 병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피고입니다. 병에 이름이 없으면 의대 교과서에도 없고, 연구비도 보험 코드도 교육도 없습니다. 이름이 없으니 의사도 못 알아보고, 가족도 못 알아보고, 환자 본인은 자기가 미치는 건지 그냥 나쁜 사람이 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그 구멍이 만든 비극입니다.

동시에 나는 그 배심원을 쫓아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배심원이 혼자 버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를 지키는 장치입니다. 오늘 다수 의견에 눌린 소수가 내일 나를 위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혼자 버티는 것과 이유를 대는 것은 다릅니다. 그는 이유를 댔고, 그 이유는 법정에서 충분히 다퉈볼 만한 주장이었습니다. 고집이 아니라 판단이었습니다.

양쪽 진영이 함께 지우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법은 마음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를 묻습니다. 그런데 의학은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결론은 의학이 아니라 주사위가 정할지도 모릅니다. 다음 재판에 어떤 열두 명이 앉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산후 정신증을 진단 기준에 넣자는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세계보건기구의 분류에는 이미 항목이 있습니다. 다음 진단 기준 책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9월 29일 법정이 다시 열립니다. 검찰은 재심을 할지 정하고, 변호인은 한 사건을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주장을 꺼낼 예정입니다. 다만 배심원이 결론을 내지 못한 재판은 대체로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 병에 이름을 붙여줄 것인가. 아니면 이름 없는 병을 안고, 다음 재판에서 또 다른 열두 명을 앉혀놓고 같은 질문을 다시 물을 것인가. 열한 명이 그렇다고 하는데 한 명이 아니라고 하면, 그건 재판이 아니라 동전 던지기입니다. 다만 그 동전은 아이 셋의 이름 위에서 던져지고 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한컴 한글 문서 작성 시 곧은 따옴표 고정하기

윈도우 부팅시 크롬을 전체 화면으로 자동 실행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