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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생각] 유턴한 차, 달려든 이발사

월요일 오후 3시 35분, 호주 남동부의 작은 도시 왕가라타 큰길이었습니다. 헬렌 헤인즈(65)가 자기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입니다. 흰색 사륜구동차 한 대가 그녀를 지나쳤습니다. 잠시 뒤 차는 유턴해서(차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다시 돌아왔습니다. 차는 그녀를 두 차 사이에 밀어붙였습니다. 뒤로 물러섰다가 한 번 더 밀었습니다.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경호원이 아니라 길가 이발사였습니다. 릭키 제프리스는 운전자를 차에서 끌어냈고, 칼 한 자루도 나왔습니다. 운전자는 43살 동네 남성이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최근에 그를 감시 대상으로 삼을 만한 정보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총리는 “사고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테러(사람을 해치려는 조직적 범죄) 전담 수사팀까지 붙었습니다. 내가 보는 핵심은 이 사건이 남긴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세지 못하는 것입니다. 호주연방경찰은 지난 1년 동안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를 향한 위협과 괴롭힘 신고를 1,067건 받았습니다. 1년 전 951건보다 12% 늘었고, 4년 전 555건의 거의 두 배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신고가 몇 건 들어왔는지만 말합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단서는 경찰청장의 말에 있습니다. 최근 테러 수사에서는 이념(세상을 보는 생각의 틀)보다 원한이 먼저 보인다고 했습니다. 혼자 있고 소외된 사람이 자기 삶에 의미를 붙일 대상을 찾고, 그다음에 이념을 골라 붙인다는 것입니다. 순서가 뒤집혀 있습니다. 이념이 사람을 폭력으로 몰아가는 게 아니라, 폭력으로 갈 사람이 이념을 집어 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정치의 온도를 낮추자”는 말이 절반만 맞다고 봅니다. 방송과 정치인의 말투를 고쳐도, 혼자 있는 사람의 방 안은 그대로입니다. 이 사건에서 두 번째로 이상한 점은 호주 정치의 자랑이 하루 만에 약점이 됐다는 것입니다. 헤인즈는 경호원 없이 시내 큰길에서 자...

[지오의 생각] 열두 구가 뉴스가 된 75일 — 같은 시간에 죽은 470명

9월 26일 토요일부터 28일 월요일 아침 사이. 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동쪽에 있는 에쿠룰레니라는 지역에서 여성 시신 세 구가 더 발견됐다. 7월 15일에 첫 시신이 나온 뒤 두 달 남짓 만에 열두 구다. 경찰은 "연쇄살인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열두 구를 하나씩 펼쳐 보면, 이야기가 조금 이상해진다. 첫 번째는 부시시웨 말랑구, 서른일곱 살. 7월 15일 켐프턴파크에서 알몸인 채, 손목이 케이블타이(전선을 묶는 플라스틱 끈)로 묶여 발견됐다. 경찰은 이틀 만에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를 붙잡았다. 그 남자는 뒤이은 다른 죽음들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아홉 번째는 자불릴레 늠바. 경찰은 이 죽음이 관계 문제, 이른바 '사랑 싸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여성 두 명이 미리 꾸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함께 붙잡혔던 남성 한 명은 증거가 모자라 풀려났다. 열 번째는 음톰비푸티 은수말로. 템비사라는 동네 묘지에서 옷이 벗겨진 채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시신 옆에는 돌들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돌로 맞아 숨졌을 가능성을 본다. 하루 뒤 다른 지역으로 달아난 서른여섯 살 남성이 붙잡혔다. 열두 번째는 스물세 살 여성. 출근길에 총에 맞아 죽었다. 가방과 소지품도 빼앗겼다. 강도 사건이다. 즉 열두 구 가운데 적어도 네 건은 서로 다른 종류의 범죄다. 남자친구가 죽인 사건, 관계 다툼 끝에 벌어진 사건, 돌로 맞아 죽은 사건, 돈을 빼앗으려다 쏜 사건. 이걸 하나로 묶어 '연쇄살인범'이라고 부르는 순간, 정작 중요한 사실이 가려진다. 가려지는 사실은 이렇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 여성 569명이 살해됐다. 하루에 여섯 명꼴이다. 이 나라에서 같은 기간에 죽은 사람은 모두 5,427명이다. 여성 569명은 그중 일부다. 그리고 하루 여섯 명이라는 속도는 에쿠룰레니에서만 나오는...

[지오의 생각] 11대 1, 아무도 답을 못 한 질문

9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미국 북동쪽 끝에 있는 주)의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습니다. 판결이 나서 끝난 게 아닙니다. 아무 결론도 없이 끝났습니다. 열두 명의 배심원이 일주일에 걸쳐 마흔 시간 가까이 이야기했지만, 끝까지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배심원은 재판에 참여해 유죄와 무죄를 정하는 일반 시민입니다. 판사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결론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그 열두 명이 11대 1로 갈렸습니다. 열한 명은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고, 한 명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사건은 202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린지 클랜시는 자기 집에서 세 자녀를 숨지게 했습니다. 다섯 살, 세 살, 생후 여덟 달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재판에서 다툰 것은 그녀가 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자기 행동이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가였습니다. 여섯 주 동안 의사와 전문가들이 증언대에 섰고,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병에는 이름이 있는데, 정작 의사들이 쓰는 진단 기준 책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산후 정신증(아이를 낳은 뒤 드물게 찾아오는 심한 정신병)은 출산 1,000건당 한두 명꼴로 생깁니다. 환청과 망상(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증상)이 나타나고, 불면과 불안이 함께 옵니다. 그런데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가 만드는 진단 기준 책, 이른바 DSM에는 이 병이 따로 실려 있지 않습니다. 있다 해도 출산 뒤 네 주 안에 시작된 우울증이라는 단서 조항 정도입니다. 클랜시가 아팠던 시기는 막내를 낳고 여덟 달쯤 뒤였습니다. 책의 기준으로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넉 달 동안 정신건강 관련 병원과 상담처를 여섯 곳 넘게 찾았고, 처방전은 서른 장이 넘었습니다. 응급실에도 갔고, 스스로 병원에 입원했고, 자살예방 전화를 두 번 걸었습니다. 그렇게 도움을 청했는데도, 아무도 그 병에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습니다. 법정에서는 다른 질문이 오갔습니다. 검찰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