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웃는 사진 한 장 — 감옥 20분 거리에서 서명된 100년
맨해튼 한복판의 호텔, 저녁 7시 40분.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남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고, 여자는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다.
그 호텔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감옥이 하나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연방 구치소다. 그 안에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갇혀 있다. 올해 1월, 미군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기습해 그를 잡아 왔다. 지금은 마약 밀매 혐의를 받고 재판을 기다린다.
로드리게스는 그 사람의 부통령이었다. 지금은 그가 비워진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 여자가 자기를 잡아온 나라의 대통령과 웃으며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말했다. 그가 인터넷에 올린 133단어짜리 글에는 감옥에 갇힌 옛 상사 이야기가 한 줄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두고 "화해"라거나 "밀월"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사진이 화해의 사진이 아니라 영수증 사진이라고 본다. 값을 치르고 물건을 받은 사람들이 찍는 사진이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이미 지난달에 공개됐다.
8월 28일, 트럼프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계약"이라고 발표했다. 베네수엘라 땅속에 있는 석유 650억 배럴(석유를 세는 단위)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이 가져간다는 내용이었다. 사흘 뒤 백악관이 세부 내용을 풀었다.
세부를 읽으면 이상하다. 국가끼리 맺는 계약서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먼저 베네수엘라의 한 민간 석유회사에 유전 17개를 100년 동안 쓸 수 있는 권리를 줬다. 회사 이름은 노스아메리칸 블루에너지 파트너스, 줄여서 나베프(NABEP)다. 미국 국방부의 투자 부서가 이 회사 지분 35퍼센트를 가져간다. 국무부는 생산되는 석유의 20퍼센트를 원가에 사는 권리를 얻었다. 나머지 80퍼센트도 남들보다 먼저 살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회사 이사회 이사의 과반수는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이사 임명을 거부할 권한도 갖는다. 계약을 두고 다툴 때는 미국 법으로 판단하고 미국 법원에 간다.
돈을 댄 사람이 아니라, 권한을 쥔 사람의 계약서다. 미국 정부는 "미국 국민의 세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맞을 것이다. 국방부는 지분을 살 때 '페니 워런트'라는 방법을 썼다. 주식을 1센트 같은 헐값에 살 수 있는 권리이고, 살 의무도 없다. 세금을 안 들이고 지분과 발언권을 함께 가져간 셈이다.
그런데 이런 계약이 왜 통과됐을까. 서명한 사람이 로드리게스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국회는 여당이 다수라 지난 9월 1일 이 협정을 통과시켰다. 야권 의원들은 표를 던지지 않으면서 "세부 조항을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이렇게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지하자원은 불법 정권의 것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민의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필요한 주요 파트너"라며 미국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미국의 기분은 이 나라 정치에서 절대적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싶다. 왜 미국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야권 지도자를 밀어내고, 쫓겨난 권위주의자의 부통령과 악수했을까.
답은 계약서에 있다. 마차도는 이 계약을 팔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로드리게스는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필요로 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서명할 손이었다.
마차도는 자기 노벨평화상 메달을 트럼프에게 헌납했다. 상을 만든 위원회가 반대했는데도 그렇게 했다.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려 한 시도는 여러 번 막혔고, 최근 며칠 사이에만 세 번 실패했다. 소식통들은 미국 관리들이 오히려 귀국을 미루라고 요구했다고 전한다. 도덕적인 명예보다 100년짜리 서명이 더 쓸모 있었다는 뜻이다.
이제 숫자를 보자. 650억 배럴이라는 숫자는 거대하게 들린다. 베네수엘라 전체 석유 매장량 3,030억 배럴의 약 21퍼센트다. 미국 자기 땅에 있는 매장량 460억 배럴보다도 많다. 그래서 "미국의 석유가 두 배로 늘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숫자는 두 가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첫째, 매장량은 땅속에 있다는 추정치일 뿐이다. 실제로 파낸 양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 매장량을 가졌으면서도 하루 120만 배럴밖에 뽑지 못한다. 한때는 하루 300만 배럴이 넘었다. 시설이 낡고 투자가 끊긴 탓이다. 게다가 베네수엘라 석유는 끈적하고 불순물이 많은 중질유다. 그냥은 못 쓰고 특수한 정유 시설을 거쳐야 한다. 트럼프는 2~3년 안에 돈이 된다고 했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10년은 잡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 거래를 "실제로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 편의 촌극"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둘째, 이 계약은 베네수엘라가 왜 가난한지를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 눌러 앉힌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덕분에 부자가 된 나라가 아니라, 석유 때문에 다른 산업이 죽은 나라다. 석유가 팔리면 다른 것을 만들지 않아도 됐다. 유가가 무너지자 나라 전체가 무너졌다. 지금 물가 상승률은 1년에 576퍼센트다. 국민 다섯 명 중 네 명이 넘게 가난하다. 인구의 4분의 1이 나라를 떠났다.
여기서 100년이라는 기간이 중요해진다. 세계는 서서히 석유를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 시기에 맞춰 베네수엘라는 앞으로 100년 동안 자기 땅의 5분의 1을 석유 산업에 묶어두게 됐다. 돈은 들어온다. 그러나 그 돈은 다시 석유 시설로 간다. 석유를 팔아 석유에 기대는 구조가 한 세기 더 연장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650억 배럴은 부(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청구서의 크기다.
미국 안에서도 이 계약을 보는 시각은 갈린다. 트럼프 쪽은 "중국과 러시아를 이 지역에서 밀어내고 에너지 주도권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반대쪽은 "총구를 들이대고 석유를 가져가는 것", "현대판 식민지"라고 비판한다. 베네수엘라 정치권에서도 "나라를 파는 행위"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8월 카라카스에서는 "미국은 물러가라"는 시위도 있었다.
두 쪽 다 근거가 있다. 실제로 이번 계약으로 중국 기업이 운영하던 유전 5개와 러시아 기업의 유전 1개가 새 회사로 넘어갔다. 중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중국의 합법적 권익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반발했다. 자원을 둘러싼 세력 다툼이라는 시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두 쪽이 똑같이 지우는 것이 하나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이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계약은 미국과 임시 정부 사이에서 이뤄졌다. 국회는 여당이 다수라 통과시켰다. 로드리게스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다. 앞사람이 군사 작전으로 끌려간 뒤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나라의 5분의 1을 100년 동안 넘기는 일을 국민에게 물어보지 않고 결정한 것이다. "도둑이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는 동안, 정작 그 자원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은 대화의 밖에 서 있다.
로드리게스 본인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는 2019년 같은 유엔 무대에서 미국의 제재를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부르고, 미국이 "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냈다고 비난한 사람이다. 2018년에는 미국 재무부의 제재 명단에 올라 자산이 묶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 명단에서 풀려났다. 미국 마약단속국이 여러 해 동안 들여다보던 그에 대한 수사도 중단됐다. 같은 사람인데 태도가 달라졌다. 개인의 자리가 바뀌면 목소리도 바뀐다는 것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도 드물다.
이걸 위선이라고만 부르면 놓치는 게 있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이다. 앞사람은 감옥에 있고, 자기 차례가 올 수도 있었다. 그가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나라의 자원을 내주고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런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만든 구조다. 감옥에서 20분 거리에서 찍은 웃는 사진은 그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같은 주에 유엔 인권 전문가가 보고서를 냈다. 미군이 지난 1년 남짓 마약 밀매가 의심되는 선박을 상대로 68차례 공습을 해 223명이 죽었고, 이것이 국제법상 반인도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두로 체포 작전도 "불법적인 무력 사용"이라고 짚었다. 마약을 실은 배였더라도 군사 공격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화려한 호텔의 악수와 그 보고서는 같은 사건의 앞뒤다. 악수가 잘되면 보고서는 잊힌다.
이 계약은 우리에게도 남는 것이 있다. 미국이 원가로 20퍼센트를 먼저 가져가고 나머지도 먼저 살 수 있다면, 그 석유를 시장에서 사야 하는 나라는 값을 더 치른다. 중질유를 잘 다루는 정유 시설을 가진 우리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사는 입장에서는 불리해질 수 있다. 남의 계약서가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다시 호텔 사진으로 돌아가자. 웃는 두 사람 뒤에 감옥이 있고, 그 감옥 뒤에 하루 120만 배럴밖에 못 뽑는 유전이 있고, 그 유전 뒤에 국민 다섯 명 중 네 명이 가난한 나라가 있다.
이 사진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트럼프에게는 선거를 앞둔 성과물이고, 로드리게스에게는 국제 무대의 입장권이다. 정작 자기 땅의 석유 주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 사진 속에 없다.
베네수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가졌는데도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 답이 석유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넘치는 자원은 나라를 게으르게 만든다. 그 나라에 지금 필요한 것은 100년짜리 계약이 아니라, 석유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런데 이번 계약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서명됐다.
20분 거리의 감옥은 조용하다. 그 침묵이 이 계약의 마지막 조항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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