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다섯 나라가 고른다
한국 시간 토요일,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미첼 바첼레트가 짧은 영상 하나를 올렸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1분 남짓한 영상이었다. "나는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그만두기로 했다."
유엔(세계 나라들이 모여 함께 의논하는 국제 기구)의 사무총장은 이 기구의 얼굴이다. 지금은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맡고 있고, 임기는 올해 12월 31일에 끝난다. 그래서 전 세계가 80년 만에 처음 나올 여성 사무총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첼레트는 그 후보 중 하나였다. 대통령을 두 번 했고, 유엔에서 인권 책임자도 지냈다.
그런 사람이 왜 스스로 물러났을까.
답은 이틀 전에 나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세계 평화와 안전을 다루는 핵심 회의체)가 비공개로 세 번째 '가투표'를 했다. 가투표는 정식 선거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지지를 받는지 미리 확인하는 절차다. 여기서 바첼레트가 받은 표는 찬성 1표, 반대 11표였다. 7월에는 찬성이 6표였는데 8월에 2표로 줄었고, 이번에는 1표까지 내려앉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유엔 회원국은 193개다. 그런데 새 사무총장을 실제로 정하는 곳은 15개 나라가 모인 안보리이고, 그중에서도 거부권(다른 나라가 모두 찬성해도 한 나라가 혼자 막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5개 나라가 사실상 결정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다. 총회는 안보리가 추천한 한 사람을 그대로 인정해 왔다. 한 번도 뒤집은 적이 없다.
즉 193개 나라가 뽑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5개 나라가 뽑는다. 바첼레트가 받은 1표는 그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바첼레트를 떨어뜨린 건 그의 실력이 아니었다. 자기 나라와 미국이었다.
칠레는 지난 2월 바첼레트를 후보로 직접 추천했다. 브라질과 멕시코도 힘을 보탰다. 그런데 지난 3월, 칠레에 새 대통령이 들어섰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다. 그는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자기 나라가 추천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자기 나라가 미는 후보를 자기 나라가 내린 것이다.
미국 쪽 움직임은 더 직접적이었다. 지난 4월,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마이크 왈츠는 상원 청문회에서 바첼레트가 그 자리에 맞는지 묻는 질문을 받고 "우려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 전에 미국 공화당 의원 28명은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바첼레트를 거부권으로 막아 달라고 요청했고, 그 편지에는 그가 낙태 권리를 지지해 온 이력을 문제 삼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안보리 안에서 '여성 사무총장을 밀자'는 제안 자체에 미국과 러시아가 물을 끼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가 첫 번째 모순이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9월, 80년 동안 여성 사무총장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을 유감으로 여기고 여성 후보를 적극 고려하라고 결의했다. 그러면서 정작 여성 후보를 가장 앞에서 밀던 사람은 거부권 앞에서 먼저 무너졌다.
두 번째 모순은 숫자에 있다. 이번 가투표를 보도한 기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덧붙인다. "반대표를 누가 던졌는지는 알 수 없다." 안보리는 아직 상임이사국과 일반 이사국의 표를 색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설계다. 누가 반대했는지 모르면, 누가 진짜 문을 잠갔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이에 5개 나라의 힘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금 선두를 달리는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코스타리카 출신 레베카 그린스팬이 찬성 9표로 1위다. 정식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채웠지만, 반대도 5표나 받았다. 유엔 전문 매체 패스블루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그 반대 5표 중 두 표가 중국과 러시아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거부권을 가진 나라가 반대하면 9표를 채워도 끝이다.
비교할 자료도 있다. 지금 사무총장인 구테흐스는 선거 당시 찬성표가 한 번도 11표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지금 후보 중 누구도 그만큼 강하지 않다. 선거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판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힘이 흩어질까. 2025년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선출 과정을 더 투명하게 바꾸자고 했을 때, 5개 상임이사국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후보를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추천해서 총회가 고르게 하자는 제안도 막혔다. 프랑스만 조금 유연했다는 분석이 있다. 또 하나, 후보 등록에는 마감일이 없다. 이건 열린 문이 아니라 5개 나라를 위한 뒷문이다. 마감이 없으면 마지막 순간에 원하는 사람을 끼워 넣을 수 있다.
이 자리에 앉을 사람이 맞을 현실도 어둡다. 구테흐스는 올해 1월 회원국에 보낸 편지에서 유엔이 '재정 붕괴' 직전이라고 경고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나라들이 내지 않은 분담금(회원국이 내는 회비)은 15억 7천만 달러로, 1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유엔은 직원 약 2,900명을 줄였는데, 이는 전체 인력의 5분의 1에 가깝다. 가장 큰 돈줄인 미국은 40억 달러 가까이 밀려 있다. 돈을 안 내는 나라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구조다.
여기서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하겠다. 바첼레트의 사퇴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성적표다. 그는 '다자주의(여러 나라가 함께 의논해 결정하는 방식)와 국제법을 지키겠다'는 캠페인을 했다. 그런데 그 캠페인을 끝낸 건 정확히 다자주의가 막아야 할 힘들이었다. 한 나라의 정치가 갑자기 뒤집힌 것, 그리고 한 초강대국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국제법이 아니라 이 두 가지가 후보의 운명을 정했다.
더 뼈아픈 건, 80년 만의 첫 여성 사무총장이 정말 나온다 해도 그것이 진짜 변화일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어떤 후보가 이기든 그 사람은 파산 직전의 기구를 물려받는다. 그 기구의 가장 큰 돈줄을 쥔 나라는 회비를 밀린 채로 그 돈을 협상 카드처럼 쓴다. 여성이 유독 어려운 상황에서만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현상을 '유리절벽'이라고 부른다. 첫 여성 사무총장이라는 상징은, 그 상징을 무의미하게 만든 바로 그 5개 나라의 손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명예는 주지만 힘은 주지 않는 자리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유엔은 오랫동안 말만 많고 일은 못 하는 조직이었다. 가자 전쟁도,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란 문제도 막지 못했다. 예산을 줄이고 개혁을 요구하는 건 낭비를 참지 못하는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그 지적 자체는 틀리지 않다. 다만 개혁을 요구하면서, 그 개혁을 결정하는 절차는 손대지 않겠다고 5개 나라가 함께 막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개혁이 목적이 아니라 협상 카드였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보는 진짜 문제는 누가 사무총장이 되느냐가 아니다. 지금 이 기구는 스스로 막힘을 만드는 나라들이 스스로의 지도자를 고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진보 진영은 '드디어 여성, 드디어 다자주의'를 말하고, 보수 진영은 '망가진 유엔을 고치자'고 말한다. 두 진영은 서로 싸우지만 한 가지는 같이 믿는다. 유엔은 쇠퇴를 관리하는 기구라는 것. 누구도 '이 구조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게 양쪽이 함께 가리고 있는 부분이다.
토요일의 1분짜리 영상은 그래서 짧은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목소리가 되어야 할 자리가 실은 다섯 나라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해 준 장면이었다. 바첼레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때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도전을 맡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때가 맞지 않았다는 말은 스스로를 낮추는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80년 동안 그 자리에 여성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말은 개인의 체념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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