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다리를 끊으면 사람이 무너진다

한 나라의 총리가 밤기차를 타고 조용히 국경을 넘었다. 2026년 10월 4일 일요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다. '총리'는 나라를 이끄는 가장 높은 자리의 정치인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바로 그날 아침, 키이우에서는 폭발음이 울렸다. 하필 그날이었다. 러시아 드론이 드니프로 강 위의 '피브니치니(북부) 다리'로 돌진해 터졌다. 차들이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불덩이가 치솟고 검은 연기가 올라갔다. 두 명이 다쳤다. 이 다리가 맞은 것은 이틀 연속이었다. 며칠 전에는 남쪽의 '피브덴니(남부) 다리'가 여러 차례 맞았다. 전쟁이 시작된 뒤 키이우의 다리가 공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서 잠깐 멈춰 보자. 러시아는 왜 하필 이날, 하필 '다리'를 때렸을까.

키이우는 강으로 갈라진 도시다. 드니프로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과 동쪽으로 나뉜다. 다리가 여덟 개, 그중 차가 다니는 다리가 여섯 개다. 서쪽에는 정부 청사와 회사들이 모여 있고, 동쪽에는 약 100만 명이 사는 동네가 있다. 쉽게 말해, 시민 대부분이 동쪽에서 자고 서쪽으로 출근한다. 그 통로가 바로 다리다.

러시아는 "병력과 군수품을 옮기는 데 쓰이는 다리를 때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달랐다. 차가 다니는 다리 여섯 개 가운데 다섯 개의 통행이 막히거나 크게 제한됐다. 출근길이 무너지고, 물건을 나르는 길이 끊겼다. 다리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됐다. 총을 쏘지 않고도 도시의 하루를 멈춰 세운 것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가 입수했다는 러시아의 겨울 공격 계획 문건을 보도했다. 내용은 이렇다. 변전소(전기를 나눠 보내는 시설)와 발전소, 보일러 시설을 차례로 때린다. 키이우, 하르키우, 오데사 같은 큰 도시의 전기와 난방을 최대 90퍼센트까지 끊는 게 목표다. 더 무서운 대목은 따로 있다.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세 곳과 전력망을 잇는 개폐소(전기의 흐름을 여닫는 장치)를 미사일로 때리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었다. 그 개폐소는 원자로에서 1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여기서 이 전쟁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를 밀어낼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두 나라가 겨루는 것은 '땅'이 아니라 '버티기'다. 누가 먼저 지치는가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무기는 탱크가 아니다. 요격 미사일, 변압기, 다리, 발전소다. 겨울은 이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추위는 사람을 이기게 만들지 않는다. 그냥 지치게 만든다.

메르츠 총리가 가져온 선물도 이 틀에서 봐야 한다. 독일은 13억 유로, 우리 돈 약 2조 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중 10억 유로는 군사 지원, 3억 5천만 유로는 에너지 시설 복구 자금이다. 드론을 함께 만드는 합의도 확정했다. 숫자만 보면 크다. 그런데 전체 그림을 보면 다르다. 독일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준 돈은 433억 유로가 넘는다. 이번 지원은 그중 3퍼센트쯤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다만 '전폭 지원'이라는 말이 주는 인상보다는 작다.

더 중요한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우크라이나는 옛날식 드론은 90퍼센트쯤 막아낸다. 그런데 러시아가 새로 쓰는 '제트 드론'은 절반 조금 넘게밖에 못 막는다. 이 드론은 시속 500에서 600킬로미터로 난다.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내는 속도의 다섯 배쯤 된다. 러시아가 쏘는 이런 드론은 6월에 350대였는데, 8월에는 2,800대로 늘었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요격 미사일은 만들려면 1년에서 1년 반이 걸린다. 돈은 빨리 도착하는데, 그 돈으로 살 무기는 늦게 도착하는 셈이다.

그럼 메르츠는 왜 위험한 도시로 직접 갔을까. 그가 탄 기차에는 독일 방산 기업(무기를 만드는 회사)과 에너지 기업 임원 열 명이 함께 있었다. 독일 정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함께 무기를 만들면 돈과 기술이 독일로도 돌아온다. 그러면 독일도 자기 나라 기반 시설을 지키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건 한쪽이 주고 한쪽이 받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인 나라를 살아 있는 시험장 삼아 기술을 다듬고, 독일은 일자리와 안보를 챙긴다.

이걸 두고 "지원이 순수하지 않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래서 오래 갈 수 있는 구조다. 다만 대가가 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타우루스 미사일은 끝내 주지 않았다. 대신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만든 장거리 무기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칭찬 같지만, 속을 보면 독일이 직접 휘말리는 위험을 피하려는 계산이 섞여 있다. 도움은 언제나 주는 사람의 사정에 맞춰진다.

여기서 양쪽 진영이 함께 놓치는 지점이 하나 있다. 진보 진영은 이 사건을 '협상의 기회'로 읽는다. 푸틴이 메르츠와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말에 주목한다. 보수 진영은 '확전의 전운'으로 읽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 시설을 때리며 전쟁이 커진다고 본다. 두 이야기는 서로 반대처럼 보인다. 그런데 둘 다 똑같이 지운 사실이 있다. 지금 양쪽 지도부 모두 전쟁을 멈출 이유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겨울을 앞두고 유리해지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 지원이 끊길까 봐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평화 회담'은 진짜 협상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도구에 가깝다. 푸틴의 '대화' 제안도 손을 내민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떠보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보이지 않는 변수도 하나 더 있다. 러시아 드론의 심장, 그러니까 엔진이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제 엔진이 '산업용 냉각 장치'라는 이름표를 달고 러시아 드론 공장으로 몰래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무기에서 발견되는 외국 부품의 60퍼센트가량이 중국제라는 분석도 있다. 제재(벌을 주려고 거래를 막는 것)를 아무리 촘촘히 짜도 새는 구멍이 있다는 뜻이다.

이 구멍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 계산 때문이다. 러시아가 쓰는 드론 한 대는 비교적 싸다. 우크라이나가 그걸 막으려고 쏘는 요격 미사일은 훨씬 비싸다. 싼 것으로 비싼 것을 계속 소진시키는 구조다. 이건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이 앞으로 자기 나라를 지키려 해도 똑같은 계산과 마주친다. 그래서 독일이 우크라이나와 드론을 함께 만들려는 건 남을 돕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다시 처음의 다리로 돌아가 보자. 다리는 원래 무엇을 위해 지어졌나. 사람이 건너라고 지었다. 군대가 아니라 출근하는 사람, 장 보는 사람, 학교 가는 아이가 건너라고. 그 다리를 끊는다는 건 그 사람들의 하루를 끊는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군사를 옮기는 다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무너지는 것은 시민의 일상이다. 이게 이 전쟁의 가장 잠잠한 잔인함이다. 총성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메르츠가 키이우에 머무는 동안에도 공습 경보가 세 번 울렸다. 그는 대피소로 가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위협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용감한 말이다. 하지만 그날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었다. 그들은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피해야 했다.

돈과 무기를 보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다른 데 있다. 다리를 끊고, 전기를 끊고, 겨울을 무기로 쓰는 전쟁은 어떻게 끝나는가.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누가 이겼는지를 정말 궁금해할까. 어쩌면 그들은 그냥 다시 다리를 건너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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