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이름을 올린다'는 것 — 피지 사업가가 미국 입국 금지된 이유
피지의 수도 수바. 언덕 위에 '웨이라이 호텔'이라는 건물이 하나 있다. 이 호텔 한쪽에는 '화교서비스센터'라는 사무실이 붙어 있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갱신하고 여권 문제를 물어보러 오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 주, 이 사무실을 맡아온 자오 푸강이라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미국 땅에 발을 못 들이게 됐다. 그와 가족까지 전부. 미국 정부가 "그가 피지 사람들에게 뇌물(남에게 일을 잘 봐주는 대가로 몰래 돈이나 이익을 주는 것)을 줘서, 중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범죄 조직이 이득을 보게 도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자세한 설명이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부패(권력을 이용해 개인적 이득을 챙기는 것)나 인권 침해에 연루됐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이름을 공개하고 미국 입국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이걸 근거로 지난 2월엔 팔라우 상원의장과 마셜제도의 전직 시장도 같은 명단에 올랐다. 이번엔 자오 차례였다.
그런데 자오는 피지에서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기소된 적도 없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할 법원 판결이 아직 없다는 뜻이다.
미국이 내세운 근거는 언론 조사와 정보기관의 '의심'이다. 2024년에 국제 탐사보도 매체와 호주 방송이 "호주 당국이 그를 국제 범죄 조직의 핵심 인물로 의심한다"고 보도했다. 마약 밀수, 돈 세탁, 사람을 사고파는 인신매매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호주도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고, 그를 재판에 넘기지도 않았다. 의심은 의심일 뿐, 증명된 사실은 아니었다.
자오는 "그런 적 없다"며 미국 대사관에 편지를 보내 항의했다.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이 조치는 그를 벌한 게 아니다. 그를 '명단에 올린' 것이다. 미국 입국 금지는 그가 피지에서 사업하고 사는 데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진짜 겨냥은 다른 데 있다.
태평양에는 작은 섬나라가 수십 개 있다. 땅은 좁고 사람은 적고 돈은 부족하다. 미국과 중국은 이 섬들에 군사 기지를 두거나 항구를 쓰려고 서로 경쟁한다. 이런 경쟁에서 중요한 건 그 나라 정치인과 사업가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미국이 자오의 이름을 공개한 진짜 목적은 그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고 나는 본다. 마치 교실 게시판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중국 편에 서서 뇌물을 받으면, 언제든 너도 이 명단에 오른다." 증거를 하나하나 공개하지 않고도 경고를 보낼 수 있는, 값싸고 강한 방법이다.
그래서 이 조치는 양날의 칼이다. 진짜로 부패한 사람을 잡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증거를 다 보여주지 않은 채 이름만 올려서, 한 사람의 명예와 생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자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한 이유가 여기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비방"이라고 반발했다. 미국은 "중국과 연결된 범죄자들이 태평양에 널려 있다"고 맞섰다. 두 강대국의 주장이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런데 두 나라 말고, 정작 이 사건이 벌어진 무대인 피지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피지 외교장관은 "미국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피지 사람이 피지에서 무엇을 했는지 재판할 권한은 피지에 있다. 그런데 그 판정을 미국이 먼저 내렸다. 작은 나라는 강대국의 정보 싸움터가 됐고, 자기 국민의 죄와 무죄를 남의 나라가 먼저 말하게 됐다.
'화교서비스센터'라는 공간 자체도 흥미롭다. 겉으로는 운전면허 갱신을 도와주는 평범한 사무실이다. 그런데 인권단체들은 이곳이 중국 정부가 해외 교민을 관리하고, 중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압박하는 통로로 쓰인다고 본다. 합법적인 일과 불법적인 일이 같은 건물 안에 섞여 있는 셈이다.
이 모호함 자체가 무기다. 진짜 범죄 조직이라면 남에게 들키지 않게 숨을 곳이 필요하다. 진짜 영사 업무라면 의심을 받아도 내세울 명분이 필요하다. 두 얼굴을 가진 공간은 어느 쪽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미국도 중국도 이 모호함을 각자 자기 식으로 이용한다.
피지 총리는 2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잠자는 개는 건드리지 말자." 중국 경찰관들을 조용히 돌려보내면서도, 중국과의 경찰 협력 약속은 남겨두겠다는 뜻이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처세를 '잠자는 개'라고 부른 셈이다.
자오의 처지도 그렇다. 그는 어느 편도 온전히 될 수 없다. 미국이 이기면 범죄자가 되고, 중국이 이기면 다시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작은 나라에서 강대국 사이에 낀 사업가와 정치인의 운명이 그렇다. 어제의 자산이 오늘의 표적이 된다.
이 사건은 재판이 아니라 명단 작성으로 굴러간다. 그 명단이 진짜 부패를 걸러내는 도구인지, 강대국이 약한 나라를 흔드는 몽둥이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이 판정이 이뤄지는 자리에,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없다는 것. 그 빈자리가 오늘 사건의 진짜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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