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이메일 한 통에 하루가 멈춘 나라

10월 11일 일요일 아침,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도날트 투스크 총리(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는 아침 7시에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 자신과 국방장관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 경찰에 전달됐다는 것이었다.

그날 폴란드는 조용하지 않았다. 경찰, 총리와 장관을 지키는 경호 기관, 그리고 정보기관(다른 나라의 속내를 캐내고 나라 안의 위험을 미리 찾아내는 곳) 관계자들이 긴급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난 뒤에는 한 남성이 체포됐다. 60대의 폴란드 남성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그 이메일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누가 보냈는지는 아무도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말만 남겼다.

이메일 한 통. 그것도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편지 한 통이 하루 만에 나라의 안보 회의를 열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답은 이메일이 아니라, 그 이메일을 받아든 나라의 상태에 있다.

바로 그 전 주에 폴란드에서는 학교에서 흉기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어느 직업학교에서는 19살 청소년이 9명을 다치게 했다. 이틀 뒤에는 15살 학생이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칼 세 자루를 들고 들어가, 37살 여성 직원을 숨지게 했다. 이 학생은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려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같은 주에 세 번째 사건도 미리 막았다.

투스크 총리는 이때 "모방의 무서운 현상"이라는 말을 썼다. 인터넷에 넘치는 폭력과, 폭력을 띄우는 일부 매체의 태도도 문제로 지목했다. 그리고 경찰에게 매일 학교를 돌라고 지시했다.

이런 나라에서 이메일 한 통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며칠 사이에 실제로 사람이 죽었고, 범인은 청소년이었고, 그 청소년은 인터넷에서 본 무언가에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설마 그럴 리야"라고 넘길 수 있는 위협이 거의 남지 않는다.

폴란드가 놓인 자리도 한몫한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라다. 국경 근처에 러시아 미사일로 보이는 물체가 떨어져 구덩이가 생긴 일도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러시아가 폭탄이 아니라 인터넷, 소문, 자잘한 사고들을 이용해 유럽을 흔들고 있다고 여러 번 경고해 왔다. 이런 방식을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부른다. 총을 쏘지 않으면서 상대 나라를 지치게 만드는 싸움이다. 러시아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부인한다.

그래서 이 뉴스를 본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곧바로 하나의 답이 떠올랐을 것이다. 러시아. 나도 처음엔 그쪽으로 생각이 갔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을 폴란드 내무장관(치안을 맡는 장관)이 직접 했다. "지금 단계에서 외국이 관련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극단적인 생각을 주고받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그 남성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찾아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이 이번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러시아를 의심하는 반사적인 반응 자체가 이미 하이브리드 전쟁이 노린 성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목표는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다음번에는 뭐가 진짜일까"를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무기다. 공격자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방어하는 쪽은 경찰과 경호와 정보기관을 하루 종일 동원해야 한다. 비용의 차이가 곧 압박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진짜 배경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폴란드는 지금 정치적으로 두 쪽으로 깊게 갈라져 있다. 2025년 대선에서 야당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가 대통령이 되면서, 총리와 대통령이 서로 다른 편을 대표하는 이른바 '동거 정부'가 됐다. 대통령은 총리 정부가 만든 법안 40개가 넘게에 서명을 거부했다. 대통령에게는 법을 막을 수 있는 권한(거부권)이 있기 때문이다. 막힌 법안 중에는 유럽연합의 방위 자금을 받아오기 위한 법도 있었다. 총리 쪽은 "대통령이 나라의 방위를 막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대통령 쪽은 "빚을 다음 세대에 넘기려 한다"고 맞선다.

서로를 '나라를 망치는 상대'라고 부르는 말이 매일 오가는 나라에서는, 밖에서 온 편지 한 통이 집 안 싸움에 불을 붙이기 쉽다. 폴란드 언론 분석가들도 총리 정부가 '안보'를 정치의 중심에 놓고 대통령을 방해꾼으로 몰아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지적이 맞든 틀리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행동에 명분을 얻는다.

양쪽 진영이 함께 가리고 있는 지점도 있다. 두 진영 모두 이번 일을 '안보' 문제로만 본다는 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국방이나 치안이 아니라 신뢰다. 국민이 자기 나라의 절반을 믿지 못하고, 정부가 내놓는 경고를 정치적 계산으로 의심하는 상태. 그 상태에서는 진짜 위협이 닥쳐도 아무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와 같다. 늑대가 오지 않았는데 왔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늑대가 온 것을 정치에 이용하려고 과장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늑대를 무시하게 만든다. 어느 쪽이든 마지막에 잃는 것은 같은 것이다.

나는 이번 사건의 핵심이 체포된 남성이 아니라, 그 남성 한 명에게 나라 전체가 하루를 써버렸다는 사실이라고 본다. 물론 반대 의견도 충분히 가능하다. 위협을 크게 알리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정부가 안보를 앞세워 정치적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에도 근거가 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이메일 한 통이 하루 만에 나라의 시간과 사람을 다 써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일은 폴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있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같은 숙제를 안게 됐다. 위협은 만드는 데 거의 돈이 들지 않고, 대응은 아주 비싸다. 그 차이가 민주주의를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앞으로 5년, 10년의 진짜 승부는 누가 더 강한 무기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느 나라 국민이 공포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을 지키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그 이메일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우리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매번 진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오늘 폴란드가 확인한 사실이고, 아마 곧 다른 나라들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무서운 것은 총이 아니다. 총이 없다는 걸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 Al Jazeera, BBC, Reuters, AFP, AP, POLITICO, TVP World, The Polish Politics Blog 보도를 교차 확인했다. 이메일의 내용과 발신자는 공개되지 않았고, 체포된 남성의 신원과 구체적 계획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 연계 여부는 폴란드 내무장관이 직접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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