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기근은 왜 늘 예고된 뒤에 온다
유엔과 국제기구 21곳이 함께 만든 식량 감시 기구(IPC)가 월요일 경고문을 하나 내놨다. 수단의 다르푸르와 코르도판에서 기근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가뭄과 전쟁이 겹친 탓이다.
엘니뇨(태평양 수온이 올라 세계 날씨를 흔드는 현상)가 만든 가뭄은 나라의 절반을 덮쳤다. 북다르푸르에서는 경작지의 3분의 2가 작물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비는 9월 말에야 왔는데 곡물을 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서코르도판은 2004년 이후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비가 적어 땅이 마르고, 한번 망가진 농지는 다시 일구기 어렵다. 코르도판에서는 지난해 10월 이후 30만 명 넘게 집을 떠났다.
사람은 숫자로 먼저 무너진다. 남다르푸르 피난민 캠프 두 곳에서는 어린이 급성 영양실조율이 기근 기준선인 30%를 넘었다. 뇔라에서는 1월부터 8월까지 영양 치료를 받으러 온 아이 가운데 심각한 영양실조로 입원한 비율이 5%에서 11%로 두 배가 됐다.
IPC는 의료가 사실상 닿지 않고 깨끗한 물도 줄었다고 전했다. 영양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병은 곧 죽음이다. 기근은 굶어 죽는 일만 뜻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경고문에서 가장 무서운 숫자는 영양실조율이 아니다. 돈이다. 세계식량계획(굶주린 사람에게 식량을 보내는 유엔 기구)의 수단 사업은 지난해 6억 4,500만 달러를 쓸 수 있었다. 올해 9월까지 모인 돈은 2억 600만 달러뿐이다. 3분의 1 토막이 났다.
10월 8일 기준으로 수단 구호 요청액의 절반도 걷히지 않았다. 위기는 커지는데 지갑은 마르고 있다. 세계의 경보 장치는 아주 잘 돌아간다. 고장 난 쪽은 지갑이다.
왜 돈이 끊겼을까. 세계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옮겨 간 관심은 조용히 사람을 죽인다. 기근은 늘 예고된 뒤에 오는데, 예고를 듣고도 아무도 돈을 내지 않는다.
경고문은 어느새 면책증명서처럼 쓰인다. "우리는 미리 알렸다"는 문장이 책임을 덜어내는 문장이 된다. 이번 경고문에는 단서가 하나 붙었다. "완전한 분석을 하기에는 조사 자료가 부족하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전쟁이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측정되지 않는 기근은 없는 기근이 아니다. 다만 책임을 물을 근거가 사라질 뿐이다.
수단에서 굶주림은 사고가 아니라 방법이다. 시장을 때리고 구호 차량을 막으면 사람은 그대로 무너진다. 지난 5월 기준으로 수단 인구의 40%가 넘는 1,95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 상태였다.
기후 변화는 흔히 미래의 일처럼 말해진다. 수단에서는 이미 타오르는 전쟁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 같은 엘니뇨가 다른 나라에서는 물 부족으로 끝나고, 이곳에서는 죽음으로 끝난다. 비의 양이 아니라 나라의 힘이 결과를 가른다.
지나간 위기는 흔적을 남긴다. 농부들이 농사를 접고 원조와 시장에 기대기 시작하면 그 생계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원조가 끊기는 날이 두 번째 위기의 시작이 된다.
IPC 기근 검토위는 이렇게 썼다. "기근은 시스템의 붕괴다." 그 시스템은 식량만이 아니다. 물과 병원과 시장,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믿는 방식까지 전부다.
1998년 수단 바르엘가잘의 기근도 엘니뇨 가뭄이 방아쇠였다. 인권단체들은 그 기근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28년이 지났고 방아쇠는 똑같다. 달라진 것은 경고가 더 빨라졌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늘의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잘 예고하면서, 이렇게 잘 모른 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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