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망명이 아니라 비자
지난 일요일 브라질 대선 결선에서 룰라 대통령이 약 440만 표 차로 이겼습니다. 진 쪽은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입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큰아들이고, 아버지는 2022년 대선에 진 뒤 정권을 무력으로 뒤집으려 한 혐의로 징역 27년을 선고받아 자택에서 형을 살고 있습니다.
플라비우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선거 관리가 투표 마감을 두 시간 늘렸다며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나온 지 하루 만에, 그가 브라질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 전에 이미 발이 묶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브라질 대법원은 그에게 여권을 하루 안에 경찰에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돈세탁(불법 자금의 출처를 숨기는 일) 혐의 수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내지 않았고, 경찰은 여권을 무효로 만들고 출국 경보를 걸었습니다.
미국이 그에게 준 것은 망명 허가가 아니라 비자였습니다. 그리고 비자에는 이유를 적는 칸이 없습니다. 내가 보는 핵심은 이겁니다. 그를 붙잡을 힘이 브라질 법원에서 미국 행정부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두 서류는 전혀 다릅니다. 망명은 다른 나라가 "이 사람은 정치 때문에 박해받는다"고 판단해 보호해 주는 제도입니다. 심사가 필요하고, 받아들여지면 그 나라가 책임을 집니다. 비자는 입국을 허락하는 종이입니다. 관광객에게 주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미 국무부는 "그와 가족에게 비자를 발급해 입국을 허용하겠다"고만 밝혔습니다. 어떤 비자인지,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관리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쪽 인사가 먼저 "망명이 승인됐다"고 SNS에 썼습니다. 백악관은 그게 아니라고 정정했습니다. 그가 망명을 신청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망명'이라는 말이 먼저 퍼졌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정치적 박해였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쪽 기록은 더 이상합니다. 경찰은 출입국 시스템에서 그가 나간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가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었는지 조사하고 있고, 아르헨티나 당국은 입국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출국금지 명령을 받은 사람의 출국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나는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옵니다. 여권을 무효로 만들고 경보를 걸어도, 그 조치가 촘촘하게 작동하는 곳은 공항 카운터입니다. 명령이 그를 붙잡는 힘보다 서류를 만드는 힘에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지금 그를 '도망자'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브라질 법률 전문가들은 체포영장이 없으면 도망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어긴 것은 재판 전 조치이고, 그에 대한 처벌은 벌금이나 짧은 구류에 그칩니다.
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습니다. 법원이 예방구금(재판 전에 미리 가두는 결정)을 내리면, 그때 브라질은 미국에 신병 인도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 요청에 답해야 합니다.
그 답이 무엇이 될지 미리 보여주는 서류가 이미 나왔습니다. 비자입니다. 미국은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하지 않고도 그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비자는 판단이 아니라 허락을 적는 서류이고, 그래서 정치적 부담도 법적 책임도 남기지 않습니다.
가장 아이러니한 건 그가 떠난 시점입니다. 그는 선거가 조작됐다고 했습니다. 조작됐다면 실제로 이긴 사람은 그쪽이어야 하는데, 이긴 사람이 나라를 떠날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그와 지지자들은 정치적 탄압을 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주장이 맞으려면 지금의 수사가 정치 보복이어야 하고, 그걸 가리는 곳은 SNS가 아니라 법정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재판은 두 곳에서 열립니다. 하나는 브라질 법원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비자 심사대입니다. 뒤쪽에는 배심원도, 판결문도, 항소 절차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플로리다로 갔다가 석 달 만에 돌아와 27년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같은 길을 걸으면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서류를 손에 쥐었습니다. 정의가 그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허락이 움직인다는 것, 그게 이 사건이 남긴 가장 서늘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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