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러시아를 벌하는 법이 미국 지갑을 건드리는 이유

지난 금요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법안에 서명했다. 이름이 길다. ‘2026년 린지 O. 그레이엄 대러시아·대이란 제재법’이다. 이름 속의 그레이엄은 지난 7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이다.

이 법은 미국 의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거의 함께 손을 들어 통과됐다. 상원에서는 86대 11, 하원에서는 262대 159였다.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큰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것이 2년 넘게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은 여당과 야당이 이렇게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법이 하려는 일은 이렇다. 러시아 대통령과 고위 인사, 러시아 은행, 러시아의 에너지와 무기 산업을 제재한다. 제재는 거래를 막는 벌이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물건에는 최대 500%의 세금을 붙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진짜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러시아의 원유(땅에서 뽑아 올리는 기름)와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다섯 나라에 최대 100%의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했다. 관세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붙는 세금이다. 세금이 100% 붙으면 물건 값이 두 배가 된다. 그러면 아무도 그 물건을 사지 않는다.

그 다섯 나라 안에 중국과 인도가 들어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러시아 기름을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이 둘이기 때문이다. 법은 러시아를 직접 때리는 대신, 러시아 기름을 사주는 나라들을 때리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이 러시아를 조인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런데 법문을 천천히 읽으면 이상한 구석이 하나 보인다.

법은 대통령이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하고, ‘국익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면제할 수 있다’고 한다. ‘매길 수 있다’는 말은 ‘매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총은 장전됐지만, 방아쇠는 대통령 손에 있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그레고리 미크스 의원은 “백악관 법률가들이 대통령이 미국인에게 새 관세를 부과할 권한은 최대화하고, 러시아나 그 조력자에게 실제로 제재를 부과할 의무는 모조리 최소화하도록 법을 썼다”고 주장했다. 지지자와 반대자가 이 법을 서로 다르게 읽는 지점이 여기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법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붙은 그레이엄 의원이,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 반대해온 법안을 붙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이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미뤄왔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관세 권한을 의회가 아니라 자기 손에 쥐고 싶어 했고, 그래서 법안 처리가 1년 넘게 밀렸다. 그 상원의원이 급작스럽게 죽자 상황이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숨진 뒤 법안에 이란 제재를 넣으라고 요구하면서 “그게 린지가 원한 것이고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조금 더 넓게 봐야 한다. 올해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였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기름값이 뛰었다. 그런데 기름값이 오르면 누가 웃을까. 러시아다. 기름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는 유가를 잡으려면 러시아산 원유를 풀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고, 실제로 미국이 러시아 원유에 대한 제재를 오히려 완화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시아 바다에는 러시아 원유 약 950만 배럴이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리하면 이렇다. 러시아를 조이는 법이 통과되는 바로 그 시기에, 세계는 러시아 기름이 필요해지고 있다. 한쪽 손으로 조이면서 다른 쪽 손으로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제재는 종이에 적힌 글자보다 시장의 힘에 더 자주 진다.

인도를 보면 이 법의 어긋난 부분이 더 선명해진다. 인도는 이미 지난 2월에 러시아 원유를 끊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인도에 매기던 관세를 50%에서 18%로 확 낮춰줬다. 실제로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하루 120만 배럴에서 60만 배럴 아래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인도가 중단하기로 합의했다는 미국 쪽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다.

사실관계를 떠나서, 이미 줄이고 있는 나라를 다시 겨누는 셈이라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인도 외교부는 법안 통과 직후 곧바로 반발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미국 당국자들에게 이 조치의 위험을 계속 전달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14억 인구의 에너지 수요를 위해 앞으로도 여러 공급처에서 원유를 사겠다,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9월 19일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일방적 제재에 일관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런데 시점이 절묘하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이 법 서명 약 일주일 뒤 백악관을 찾는다. 이 법은 러시아를 겨눈 압박 도구이면서, 동시에 그 회담 테이블에 올려질 협상 카드이기도 하다.

여기서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지점을 하나 짚고 싶다. 많은 사람이 100% 관세가 러시아를 때리는 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관세는 러시아가 아니라, 인도와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물건에 붙는다. 그 세금을 실제로 내는 사람은 미국의 수입업자와 소비자다. 러시아를 겨눈 총알이 미국의 지갑에 꽂히는 구조다. 그래서 미국 의회 안에서도 반대가 나왔다. 관세가 미국 안의 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었다. 하원에서는 민주당 의원 다수가 관세 부과 권한을 대통령에게 넘기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아 반대표를 던졌다.

이제 이 사건을 양쪽 진영의 말로 보자. 지지하는 쪽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마른다”고 말한다. 반대하는 쪽은 “트럼프에게 너무 크고 무제한적인 관세 권한을 준다”고 말한다. 두 이야기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함께 가리는 것이 하나 있다.

이 법으로 영구히 바뀐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아니다. 미국 안의 권력 배분이다. 원래 무역과 관세는 의회의 권한이었다. 그 권한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그것도 러시아를 이유로, 여야가 함께 손을 들어서 넘겼다. 총을 만든 사람은 의회인데, 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 총은 다음 대통령에게도 남는다. 러시아 제재는 대통령이 마음먹기에 따라 세게도 약하게도 쓸 수 있지만, 대통령이 쥔 무역 권한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이 법의 진짜 무게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무엇이 바뀔까. 러시아는 더 많은 우회로를 찾을 것이다. 그림자 선단이라는 말이 이미 통용된다. 제재를 피해 몰래 기름을 나르는 배들의 무리다. 이번 법은 그 배들을 직접 겨냥한다. 배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은행 계좌보다 잡기 쉽다. 반면 중국과 인도는 특정 나라에 기대지 않는 쪽으로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한 나라가 “너는 저 나라와 거래했으니 벌한다”는 방식을 반복해서 쓰면, 다른 나라들도 같은 방식을 배운다. 규칙이 무너지는 것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이런 반복으로 일어난다.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원유를 사려는 나라들이 중동으로 몰리면 중동 기름값이 오른다. 그러면 그 기름을 사다 쓰는 우리 정유 회사들의 원가가 오르고, 결국 주유소의 기름값이 오른다. 인도 정유업계도 미국이 100% 관세를 실제로 적용하면 국제 유가가 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핀은 대통령이 쥐고 있으니, 당장 다음 달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레이엄 의원은 1년 넘게 이 법을 붙들고 있었다. 숨지기 직전까지 우크라이나를 다녀왔고, 동료들과 합의를 만들려고 뛰어다녔다. 그는 살아서 통과를 보지 못했다. 법 이름에 그의 이름만 남았다.

하지만 남은 것은 그가 만들려던 모습이 아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마 ‘의무’였을 것이다. 러시아에 제재를 반드시 부과해야 한다는 의무. 남은 것은 ‘권한’이다. 언제든 쓸 수 있고, 언제든 쓰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이 한 글자 차이가 앞으로 몇 년의 전쟁과 평화를 가를 것이다. 법에 이름을 남기는 일과, 법이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한컴 한글 문서 작성 시 곧은 따옴표 고정하기

윈도우 부팅시 크롬을 전체 화면으로 자동 실행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