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30만 통의 편지와 530명의 대답 — 독일 학생들이 교실을 떠난 이유
지난 금요일, 독일의 100여 개 도시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손에는 이런 팻말이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전쟁에 끼지 않겠습니다.”
주최 측은 전국에서 45,000명이 넘게 참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은 일부 도시의 숫자만 공개했는데, 베를린 2,400명, 프랑크푸르트 180명, 슈투트가르트 200명이었습니다. 어느 쪽 숫자도 전체를 다 센 것은 아닙니다. 시위 참가자 수는 언제나 이렇게 흐릿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 흐릿함을 기억해 두는 게 좋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차근차근 보겠습니다.
독일은 2011년에 징병제(나라가 정한 사람을 군대에 보내는 제도)를 멈췄습니다. 그런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독일은 다시 군대를 키우기 시작했고, 지난해 12월 5일 의회는 새 병역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찬성 323표, 반대 272표였습니다.
올해 1월부터 이 법이 시행됩니다. 18세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와 설문지가 갑니다. “군대에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남자는 반드시 답해야 하고, 여자는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독일 헌법이 남자만 군대에 보낼 수 있다고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입니다.
금요일 시위는 이 법에 반대하는 네 번째 전국 파업이었습니다. 앞서 지난해 12월, 올해 3월, 5월에도 같은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제 숫자를 봐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양쪽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정부는 설문지를 약 30만 통 보냈습니다. 이 가운데 올해 실제로 군대에 가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530명이었습니다. 0.16퍼센트입니다. 반대하는 쪽은 이 숫자를 듭니다. “청년들이 이렇게 거부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국방부는 “설문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아직 학교에 다니거나 배우는 중이라 지금 당장 군대에 갈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 스스로 지원한 사람은 약 1만 명이었고, 이는 지난해보다 8퍼센트 늘어난 숫자입니다. 국방부는 올해를 “기록적인 해”라고 부릅니다.
같은 숫자를 반대하는 쪽은 “실패”라고 읽고, 정부는 “성공”이라고 읽습니다. 둘 다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자릅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쪽 숫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법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나는 설문지가 사람을 모으는 도구가 아니라, 명단을 만드는 도구라고 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원하는 사람을 뽑는 일에 왜 나라가 18세 전원의 이름과 주소, 건강 상태, 학력을 모아야 할까요. 스스로 오는 사람에게는 명단이 필요 없습니다. 명단이 필요한 쪽은 나중에 강제로 데려갈 사람을 찾아야 하는 쪽입니다.
법에 붙은 조항 하나가 이 의심을 키웁니다. 17세부터 45세까지 남자가 석 달 넘게 외국에 나가려면 군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다행히 이 조항은 지난 4월에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하지만 법에 그런 문장이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이 법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이 법은 “싫으면 안 해도 된다”가 아니라 “일단 다 파악해 두고, 필요하면 부른다”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이 사건의 핵심이 숨어 있습니다. 징병제를 하느냐 마느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위치는 만들어 놨고, 언제 누를지만 남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조건은 “자원자가 목표에 못 미치면”입니다. 문제는 그 목표 숫자를 정부와 의회가 스스로 정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 논쟁은 결국 표 한 칸의 숫자 싸움입니다.
돈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독일의 국방 예산은 올해 827억 유로로 지난해보다 32퍼센트 늘었고, 내년에는 33퍼센트 더 늘어 1,097억 유로로 잡혔습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미국과 유럽이 함께 만든 군사 동맹)가 2035년까지 하라고 한 목표를 5~6년 앞당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돈은 대부분 빚으로 마련합니다. 원래 정부가 빚을 함부로 못 늘리게 하는 규칙이 있는데, 국방비만은 그 규칙에서 빼주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군대에 가라고 요구받는 세대는 그 돈을 갚아야 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은 몸으로 한 번, 세금으로 또 한 번 부담을 지는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독일 기사 어디에도 앞줄에 나오지 않습니다.
양쪽 진영을 다 봐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번 반대 목소리는 주로 왼쪽에서 나옵니다. 전쟁과 군대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극우 정당 AfD 안에서도 징병제 반대가 나옵니다. 대표적인 인물 획케는 “이 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AfD는 2022년 강령에서 오히려 징병제를 하자고 주장했던 정당입니다.
같은 “반대”라도 속은 정반대입니다. 한쪽은 전쟁이 싫어서 반대하고, 다른 쪽은 이 나라가 싫어서 반대합니다. 이 둘을 한 덩어리로 묶어 “청년들이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 진실을 놓칩니다.
정부 쪽 이야기에도 구멍은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 피스토리우스는 “지금은 한 해 지원자를 다 받아들일 병영도, 신체검사장도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독일의 문제는 애초에 지원자가 없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병영을 짓는 일보다 법으로 강제하는 일이 훨씬 빠르고 쉽습니다.
나는 이 사건의 진짜 뿔은 여기라고 봅니다. 18세 청년에게 편지를 보내는 나라는, 정작 그 청년들이 왜 정치를 믿지 않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독일 대학이 15세에서 30세까지 약 4,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74퍼센트가 “군 복무 결정은 윗세대의 생각으로 내려진다”고 답했습니다. 정치인이 옳은 결정을 한다고 믿는 사람은 18퍼센트뿐이었습니다. 이것은 군대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징병제 방식은 인구가 줄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독일에서 한 해 18세가 되는 남자는 약 35만 명이고, 이 숫자는 계속 줄어듭니다. 그런데 2035년까지 현역 26만 명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사람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남는 선택은 드론과 자동화된 무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봅니다. 학생들의 시위가 독일의 재무장 자체를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군대가 사람의 수로 갈지 기계의 수로 갈지를 정하는 데는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도 공짜가 아닙니다. 같은 날 교황 레오 14세는 프랑스를 방문해 “기계의 낙원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서로 다른 기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사람에게 맡길 것인가, 기계에게 맡길 것인가.
금요일 거리의 팻말은 단순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전쟁에 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것은 그 팻말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해 주는 어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30만 통의 편지와 530명의 대답 사이. 그 사이에서 나는 명단이 먼저 만들어지고, 대화는 나중에 온다는 순서를 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