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브라질은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다 — 유엔 연설 열두 날 전의 질문
2026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유엔(UN, 나라들이 모여 세계 문제를 의논하는 곳) 총회장. 이 자리에는 오래된 전통이 하나 있다. 1955년부터 이 첫 연설은 브라질이 맡았다. 이날도 여든 살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먼저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같은 자리에서 악수하며 "좋은 케미"라고 말했던 사이다.
룰라가 한 말은 짧고 분명했다.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브라질 국민의 것이다. 브라질은 주권 국가로 남을 것이다." 주권은 나라가 자기 일을 스스로 정할 권리라는 뜻이다. 이어서 나온 말이 더 셌다. "브라질은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다." 그는 미국이라는 이름을 대지 않았다. 그래도 듣는 사람은 다 알았다.
이 연설이 나온 시점을 먼저 봐야 한다. 브라질 대선이 열두 날 뒤였다. 1차 투표는 10월 4일, 결선 투표는 10월 25일이다. 유권자는 1억 5,900만 명. 룰라는 네 번째 임기에 도전한다. 여든 살에 치르는 일곱 번째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이 왜 유엔 무대에서 자기 나라 선거 이야기를 했을까. 배경을 풀어야 한다.
올해 7월, 미국은 브라질 물건에 관세를 매겼다. 관세는 다른 나라 물건이 들어올 때 붙는 세금이다. 문을 좁히는 것과 같다. 기본이 25퍼센트, 여기에 다른 명목으로 12.5퍼센트가 더 붙어 최고 37.5퍼센트가 됐다. 다만 커피와 소고기, 비행기 부품, 원자재는 빠졌다. 브라질 정부 계산으로는 대미 수출의 23퍼센트 정도가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숫자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미국은 브라질에 물건을 더 많이 팔아 왔다. 무역 흑자, 그러니까 미국이 더 많이 번 상태가 2008년부터 계속됐다. 지난해 흑자만 140억 달러였다. 브라질로 들어가는 미국 물건의 76퍼센트는 세금이 아예 0퍼센트였고, 평균 관세율도 3.1퍼센트에 불과했다. 돈을 더 버는 쪽이 "네가 불공정하다"며 세금을 때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은 진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오랜 친구였다. 2022년 선거에서 룰라에게 진 뒤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 혐의, 쉽게 말해 쿠데타(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빼앗는 일)를 꾀한 혐의로 징역 27년을 선고받았다. 트럼프는 그 재판을 "마녀사냥"이라 불렀고, 재판을 이유로 지난해 브라질에 50퍼센트 관세를 매기려 했다. 재판을 맡은 판사에게 제재를 가하고, 그 가족까지 겨냥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쓴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재판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 편지가 브라질 법정에서 증거가 됐다. 남의 나라 재판을 협박한 기록으로 쓰인 것이다. 그 결과가 올해 6월에 나왔다. 보우소나루의 셋째 아들 에두아르두는 미국에 로비를 해 아버지 재판에 끼어들려 한 혐의로 징역 4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브라질 하원의원이 자기 나라를 상대로 해외에서 로비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제 그림이 보인다. 아버지는 감옥에 있다. 아들이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를 풀어줄 수 있다. 장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바로 그 선거에 나왔다. 그는 유세에서 아버지의 석방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선거의 상금이 사면(죄를 풀어주는 것)인 셈이다.
나는 여기가 일반인이 놓치는 지점이라고 본다. 이번 브라질 선거를 "좌파 대 우파" 싸움으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한 가족의 사법적 위기를 선거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트럼프 행정부가 브라질에 하는 일에는 경제 이익이나 무역 규칙이 앞에 서 있지 않다. 뒤에 있는 것은 개인적 친분과 이념이다. 그러면서 그 수단은 관세율, 비자(외국인 입국 허가) 취소, 조직 테러 지정 같은 국가의 도구로 나온다.
반대편도 공정하게 봐야 한다. 룰라가 외세 개입을 외치는 동안 브라질 안에는 룰라 쪽의 문제도 있다. 그의 아들 파비우 루이스는 뇌물과 영향력 행사(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일) 혐의로 연방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법관이 수사를 승인했고, 룰라 본인은 "아들이 잘못했으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보우소나루 진영이 이걸 놓칠 리 없다. 플라비우는 룰라의 복지 확대를 두고 "가난한 사람의 표를 사려는 발악"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래서 이 선거는 양쪽이 서로를 규정하는 싸움이 됐다. 룰라 쪽은 "외국에 엎드린 배신자", 보우소나루 쪽은 "부패한 기득권". 두 이야기 모두 일부는 사실이고, 두 이야기 모두 상대가 감추는 것을 감춘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지난 9월 22일, 브라질 대법원 심리가 생중계로 국민에게 그대로 방송됐다. 대법관들이 서로에게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알레샨드르 드 모라이스 대법관은 동료를 향해 "쿠데타를 시도한 정치 집단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고, 안드레 멘돈사 대법관은 "나를 손가락질하지 마라"고 맞받았다. 아이러니는 이렇다. 문제의 멘돈사 대법관은 룰라 아들 수사를 승인한 바로 그 사람이다. 나라의 최고 법원이 선거를 앞두고 두 편으로 갈라져 다투는 모습을 텔레비전이 생중계했다.
여기서 숫자 하나를 더 짚고 싶다. 여론조사는 초박빙이다. 9월 21일 발표된 조사에서 한 곳은 룰라 46퍼센트 대 플라비우 45퍼센트, 다른 곳은 룰라 41퍼센트 대 플라비우 42퍼센트를 기록했다. 모두 오차 범위 안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숫자가 따로 있다. 두 사람을 "절대 찍지 않겠다"는 응답이 룰라 55퍼센트, 플라비우 56퍼센트였다. 국민 절반 이상이 두 후보를 모두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건 사랑받는 지도자를 고르는 선거가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 둘 중 덜 싫은 쪽을 고르는 선거다. 접전을 전하는 기사에는 이 숫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
룰라의 연설에서 오래 남는 문장이 하나 더 있다. "우리 바다를 지켜보는 항공모함은 필요 없다." 그는 브라질이 자기 국경을 지키는 책임을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카리브해 건너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저지른 일은 심각하다. 그 나라 주권은 이미 끝났다."
여기서 잠깐 멈춰야 한다. 룰라가 걱정하는 세계는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7월 미국이 브라질에 관세를 매긴 방식이 특이했다. 무역법 301조라는 낡은 조항을 꺼내 들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비상권한법으로 브라질에 50퍼센트 관세를 매겼다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다. 전 세계에 매긴 10퍼센트 관세도 법원에서 막혔다. 그러자 다른 법, 다른 조항으로 관세를 다시 세웠다. 이건 이제 브라질만의 일이 아니다. 같은 방식의 조사에 한국도 들어 있다. 강제노동 관련 조사에서 한국은 12.5퍼센트를 예고받았다. 관세는 더 이상 한 나라를 벌하는 예외적 조치가 아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상설 지렛대가 됐다. 룰라가 유엔에서 "세계를 영향권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라질에는 이 장면을 이미 본 사람이 있다. 1962년,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브라질 의회 선거에서 좌파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정보기관 자금을 우파 후보들에게 비밀리에 흘렸다. 1964년 브라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21년 독재가 시작됐다. 그 쿠데타에 반대했던 하원의원 루벤스 파이바는 사라졌다. 그의 손자 치쿠 루벤스 파이바는 지금 이렇게 말한다.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닌가 두렵다." 이건 어느 한쪽의 주장이 아니라 기록된 역사다.
그렇다고 내가 룰라의 대의명분이 완전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주권"이라는 말은 이번 선거에서 양쪽이 다 쓰는 무기다. 룰라는 그 무기를 밖을 향해 휘두른다. 플라비우는 안을 향해 휘두른다. 그는 브라질의 주권을 되찾겠다며, 자기 가문의 정치적 길을 막아온 국내 제도와 정치인을 문제로 지목한다. 같은 단어, 정반대 방향이다. 이것이 내가 보는 제3의 지점이다. 양쪽 모두 밖의 적이나 안의 적을 세워 두고, 그 그늘에 자기 문제를 숨긴다.
그래서 나의 판단은 이렇다. 트럼프 행정부가 브라질 선거에 실제로 압력을 넣었다는 룰라의 진단에는 근거가 있다. 미국 관리 입국 거부에 대한 맞대응으로 브라질 대사의 비자가 취소됐고, 재판을 이유로 든 관세 서한이 있었고, 범죄 조직 테러 지정이 선거 직전에 이뤄졌다.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 압력이 원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은 낮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은 떨어지고 있고, 개입으로 보이는 행동은 오히려 반대 표를 모은다. 지난해 관세 압박이 가장 거셌던 시기에 룰라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분석도 나왔다. 압박은 이기는 수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명분을 쥐여준다.
그래서 진짜 위험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그 다음에 있다. 진 쪽이 결과를 인정하느냐다. 2022년 브라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뒤에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그 재판을 둘러싸고 양쪽의 불신이 최고조에 있다. 선거는 끝나지만 그 뒤의 다툼은 오래 남는다.
그날 룰라는 트럼프의 이름을 끝내 부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 연설에서 가장 강한 문장은 그 침묵이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두가 알게 하는 것. 열두 날 뒤, 브라질 국민이 투표용지 앞에 선다. 그들이 답할 질문은 후보의 이름이 아니다. 룰라가 유엔 단상에서 던진 그 질문이다. 이 나라의 미래를, 누가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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