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70년 산 집에서 들것에 실려 나온 할머니, 그 문이 열어버린 것
2026년 9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아파트 문이 부서졌다. 경찰이 안으로 들어왔고, 87살 마리카르멘 아바스칼 할머니는 들것에 실려 나왔다. 그 집의 계약서에 할머니 아버지가 이름을 쓴 것은 1956년이었다. 70년을 산 집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 집에는 '임대료 상한'이 걸려 있었다. 정부가 집세를 마음대로 못 올리게 막아둔 계약이다. 그런데 2018년, 부동산 투자회사 우르바헤스티온이 이 건물을 사들였다. 그리고 법의 허점 하나를 찾아냈다. 월세를 500유로(약 77만원)에서 2650유로(약 410만원)로 올린 것이다.
회사는 나중에 1650유로(약 255만원)로 낮췄다. 그래도 할머니에게는 안 되는 숫자였다. 할머니가 매달 받는 연금(나이가 들어 받는 생활비)은 1350유로, 약 207만원이었다. 법원이 세 번이나 퇴거를 막았지만, 네 번째에는 막지 못했다.
영상이 퍼졌다. 다음 날부터 마드리드 번화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텐트가 하나둘 올라가더니 수백 개가 됐다. 사람들은 "마리카르멘은 남는다"고 외쳤다. 가수 아나 벨렌은 시인 라파엘 알베르티의 시 '퇴거'를 사람들 앞에서 읽었다.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광장에 나와 "이 사건은 마지막 방아쇠였다"고 말했다. 시위는 바르셀로나, 세비야, 말라가, 카디스로 번졌다.
왜 이렇게 터졌을까. 쌓여 있던 게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10년 사이 임차료가 80퍼센트 올랐다. 청년들은 월급의 98.7퍼센트를 집세로 내야 한다는 조사도 있다. 살 집이 75만 채 부족한데, 2028년에는 100만 채까지 벌어진다는 추산도 나온다. 마드리드에서는 하루 평균 세 번꼴로 누군가 강제로 집에서 쫓겨난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가 움직였다. 9월 29일 각료회의에서 두 개의 법령을 통과시켰다. 2030년까지 강제퇴거를 금지하고, 2028년 말 전에 끝나는 임대차 계약은 2년 더 자동으로 연장하고, 투자회사가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사들이는 것을 2027년 말까지 막고, 관광객용 단기 임대를 더 세게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법령은 바로 효력이 생기지만, 한 달 안에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진보 진영은 이렇게 말한다. "탐욕스러운 펀드와 시민이 싸우는 것이고, 우파 정당들은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라." 사회당의 산체스 총리는 "나는 그런 이익에 '배신자'가 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말은 다르다. 제1야당 국민당의 페이호 대표는 "8년 동안 주택 정책을 방치한 것을 막판 법령 하나로 고칠 수 없다"며 반대표를 예고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카탈루냐 독립 지지정당 후안츠의 노게라스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수백만 유로를 굴리는 펀드가 하는 퇴거는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저축해서 집 한 채 산 사람을 같은 바구니에 담는 건 실수다." 좌파 성향 포데모스는 "법령을 둘로 쪼개는 건 함정"이라며 반대 쪽에서 압박했다.
나는 이 사건에서 두 가지를 본다.
첫째, 이번 조치는 옳은 방향이지만, 새로 집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정부는 "500만 명이 구제된다"고 했지만, 실제 내용은 이미 집에 사는 취약계층의 퇴거를 미루고 계약을 늘려주는 것이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줄은 그대로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키는 법은, 집이 '없는 사람'을 돕는 법이 아니다. 이 둘을 헷갈리면 다음 세대는 더 어려워진다.
둘째, 이 사건의 뿌리는 오히려 과거의 '착한 규제'다. 1950년대에 집세를 묶어둔 계약이 70년 뒤에는 500유로짜리 복권이 됐다. 시장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데 계약 가격은 얼어붙었으니, 그 벌어진 틈을 노리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난다. 가격을 누르면 그 차액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샌다. 이번에 샌 곳은 회사의 이익이었다.
그리고 두 진영이 똑같이 비껴가는 것이 하나 있다. 아무도 집을 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낮은 집세가 가능한 이유는 100년 동안 나라가 공공주택을 꾸준히 지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그 대신 공공주택을 지어주고 나중에 시장 가격으로 팔아버렸다. 임대료를 묶고 퇴거를 막아도 집이 없으면, 임대인들이 시장에서 하나둘 빠져나가고 다음 세입자는 더 못 구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집세와 전세 문제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적이 있고, 청년이 월급 대부분을 집값에 넣는 구조는 비슷하다. 우리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규제로 아파트를 잠그는 것과, 규제와 동시에 집을 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할머니는 이제 연금의 30퍼센트(월 500유로)를 내는 조건으로 8년 계약을 맺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런데 그날 부서진 문은 한 사람의 현관문이 아니었다. 사회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여준 문이었다. 법은 늦게 왔고, 늦게 온 법은 아직 의회 문 앞에 서 있다. 그 문은 열릴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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