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완전한 승리"라는 말이 감춘 것
한 예비역 장군이 자기 나라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26년 10월, 미국 워싱턴의 한 연구소가 연 화상회의에서였다. 이름은 니찬 알론. 그는 가자 전쟁이 시작될 무렵 이스라엘 군에서 인질 협상을 맡았던 사람이다. 쉽게 말해, 붙잡힌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적과 협상하는 창구였다.
그가 한 말은 짧고 무거웠다. "전쟁은 1년은 더 일찍 끝낼 수 있었다." 인질 전원을 데려오는 합의도 2025년 10월보다 훨씬 먼저 이뤄질 수 있었다고 했다. 다른 전략 목표를 크게 해치지 않고도 말이다. 그는 이스라엘 총리가 내걸었던 "완전한 승리"라는 구호를 두고 "거짓"이라고까지 말했다.
그가 짚은 숫자가 하나 있다. 살아서 붙잡혀 간 뒤 붙잡힌 채 숨진 사람이 약 40명. 다른 결정, 다른 협상이었다면 일부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인질 전원을 데려왔다"는 말은 사실처럼 들리지만, 산 사람만 데려왔다는 뜻이 아니다. 숨진 채 돌아온 사람도 그 '전원' 안에 들어간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숫자로 만든 문장은 사람을 속일 수 있다.
그래서 여당은 바로 반격했다. 알론이 "하마스에 항복하라고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라파 진격이나 주요 인물 제거 같은 성과를 못 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의 재무장관 스모트리치는 앞서 "나 덕분에 인질들이 돌아왔다"고 했다. 알론은 그에게 "합의를 막아온 사람이 공을 가질 수는 없다"고 맞섰다. 반대편 이야기도 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다른 협상 관계자들이 알론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하마스도 유리한 조건을 노리다 여러 번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진 책임이 한쪽에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지점이 있다. 전쟁을 계속하는 게 누구에게 이익이었느냐는 질문이다. "완전한 승리"는 군사 작전의 목표라기보다 정치적 구호에 가까웠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 정당들과 손을 잡은 연립정부였다. 이들에게 휴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휴전을 하면 정부가 흔들린다. 그래서 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이 정권을 지키는 방법이 됐다.
더 날카로운 점은 이것이다. 한쪽은 이 사건을 "정부가 인질을 버렸다"고 읽는다. 다른 쪽은 "군이 항복을 부추겼다"고 읽는다. 그런데 두 이야기는 한 가지를 같이 지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익을 본 사람은 양쪽 지도부였고, 손해를 본 사람은 붙잡힌 사람과 가자지구의 평범한 주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양쪽 다 "우리가 옳았다"는 결론만 남기려 한다.
알론도 완전한 영웅은 아니다.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퇴를 고민했지만 남았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가 2025년 11월 물러날 때까지, 그가 비판한 결정은 계속됐다. 안에서 반대만 하다 때를 놓친 것인지,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본 것인지는 본인만 알 일이다. 다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 가자지구는 휴전 중이지만 상황은 무겁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겨울을 앞두고 구호품이 제때 들어가지 못해 "파괴적인 결과"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10월의 휴전은 완전한 평화가 아니라 총을 잠시 내려놓은 상태에 가깝다. 이스라엘은 선거를 앞두고 있고, 총리는 재판을 받는 중이다. 전쟁을 멈추면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구조는 여전히 그대로다.
알론의 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다. 전쟁을 오래 끄는 선택이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일부러"였을 수 있음을, 그 안에 있던 사람이 직접 말했기 때문이다. 1년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그 1년 동안 아이들은 붙잡혀 있었고, 부모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권을 지키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 부딪히면 무엇을 먼저 골라야 하는가. 그 질문은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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