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죽이지 못한 약

지난달 30일 밤, 미국 남부 테네시주의 사형 집행실. 50살 크리스타 파이크는 침대 위에 묶인 채 누워 있었습니다. 나라가 범죄자를 죽이는 형벌, 사형(死刑)을 집행하는 약이 그녀의 팔에 들어갔습니다. 잠시 뒤 그녀는 팔이 타는 것처럼 뜨겁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죄송한데, 더 위쪽 어깨 쪽으로 다시 해 주세요."

그 말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왔습니다. 원래 이 약은 몇 분 안에 사람의 숨을 멈추게 하는 독한 약입니다. 그런데 파이크는 계속 숨을 쉬었습니다. 코까지 골았습니다. 주사를 한 번 더 놨습니다. 그래도 살아 있었습니다. 집행은 중간에 멈췄고,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팔은 부어오르고 물집과 화상 자국이 남았습니다.

일주일 뒤 그녀는 눈을 떴습니다. 변호인들(재판에서 죄를 벗겨주려고 돕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녀는 "여기가 어디죠?"라고 물었습니다. 분노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죽이는 약을 맞고도 살아난 사람은 사형 역사상 그녀가 처음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 사람이 누구인지 짚어야 합니다. 파이크는 1995년, 당시 열여덟 살이던 해에 학교 친구였던 열아홉 살 콜린 슬레머를 끔찍하게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피해자를 외딴 곳으로 데려가 때리고 찌르고, 가슴에 별 모양을 새기고, 아스팔트(도로 바닥에 까는 검은 돌덩이)로 머리를 내리친 사건입니다. 판결은 1996년에 났습니다.

그러니 이건 억울한 사람이 당한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기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벌어진 일은, 나라가 사람을 죽이려고 했는데 기계가 고장 나서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 하나를 죽이려다 실패한 나라.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입니다.

같은 사건, 정반대의 두 목소리

사건이 터지자 미국 정치인들은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죽이는 방법을 바꾸자"입니다. 테네시주 공화당의 캐머런 섹스턴 하원의장은 "방법을 넓히자. 지금 당장은 어떤 방법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사 블랙번 상원의원은 아예 "전기의자를 다시 들여오자"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형 자체를 없애자"입니다. 민주당의 제리 그린은 "사형은 늘 잔인하고, 돈이 많이 들고, 편파적이었다"고 했습니다.

두 진영의 주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둘 다 한 가지를 빼먹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죄인의 처벌'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라의 솜씨'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나라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맡아 놓고,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기계가 이렇게 대놓고 고장 났는데, 그 다음 할 일이 "더 좋은 기계를 사오자"라니요.

기계가 고장 나면, 왜 아무도 책임을 안 지나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일은 '실수'라기보다 '비밀' 때문입니다. 테네시주는 사형 집행 과정을 철저히 숨깁니다. 기자들은 약을 넣는 순간조차 볼 수 없습니다. 주사 바늘이 어디에 꽂히는지도 못 봅니다. 이 약이 어디서 만들어졌고, 어떻게 보관됐고, 성분이 멀쩡한지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왜 숨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약회사들이 자기 약을 사형에 쓰는 걸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州)들은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작은 약국에서 약을 구해 옵니다. 쉽게 말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창고에서,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이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어둠 속에 만든 구조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벌어진 일은 책임 회피였습니다. 프랭크 스트라다 교정국장(감옥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이 결국 사퇴했습니다. 주지사는 "독립 조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 결과를 세상이 다 알게 될지, 누가 책임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같은 잘못을 또 합니다. 실제로 올해 5월에도 테네시는 다른 수감자의 사형 집행을 실패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진짜 주인공

이번 사건에서 가장 잊힌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피해자 콜린 슬레머의 어머니 메이 마르티네즈는 31년 만에 딸의 원수를 갚으려고 여덟 시간 넘게 차를 몰아서 왔습니다. 이웃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여행 경비로 왔습니다. 그런데 딸을 죽인 사람이 침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못 받았습니다. 사과 한마디도 못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의 정의를 못 찾았어요." 그리고 "엄마로서 내가 딸을 지키지 못했어요." 파이크를 다시 감옥으로 보낼 거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아직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였습니다. 이게 나라가 유가족에게 한 전부입니다.

여기서 제가 짚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사형을 지키자는 쪽도, 없애자는 쪽도, 정작 피해자 가족의 진짜 목소리는 잘 듣지 않았습니다. 지키자는 쪽은 '정의'라는 말 뒤에 가족을 숨기고, 없애자는 쪽은 파이크의 고통을 앞세웁니다. 조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모는 한 시간 사십오 분 동안 그 고통을 견뎠어요. 크리스타 파이크가 아니라 콜린을 생각해 주세요." 이 문장이 이 사건의 가장 정확한 요약이라고 봅니다.

죽이는 약은 왜 계속 없어지나

숨은 진실을 하나 더 보면, 미국은 사형을 집행할 약이 부족해서 점점 더 이상한 방법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47명이 사형당했고, 이는 2009년 이후 최다입니다. 그중 세 명은 총살형, 다섯 명은 질소가스(숨 막히게 하는 기체)로 숨졌습니다. 국제연합(UN, 나라들이 모여 만든 국제기구) 전문가들은 질소가스 사형을 "국가가 벌이는 고문"과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전기의자를 다시 들여오자", "방법을 넓히자"라는 말은, 겉으로는 '정의를 끝까지 집행하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을 구할 수 없어서 허둥대는 주(州)들이,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더 잔인한 옛날 방식을 다시 꺼내는 셈입니다. 이걸 '죽이는 기술의 실패'로 보면, 대답할 질문은 딱 하나입니다. 이 나라는 왜 사람을 죽이는 일만큼은 이렇게 서툴고, 이렇게 숨기려 할까요.

그리고 정치의 장단을 짚어야 합니다. 사형 집행 실패가 터진 직후, 주지사 선거에 나가는 블랙번 의원은 "방법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사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유권자(투표하는 사람) 표를 잡는 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실패한 집행이 '해결해야 할 사고'가 아니라 '선거에서 쓸 카드'로 쓰이는 겁니다. 나라가 실수로 사람을 반쯤 죽여 놓고, 그걸 정치 자금과 표로 바꾸는 셈입니다.

돌아온 문장

이 사건이 5년, 10년 뒤를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이크의 실패는 사형제를 없애자는 쪽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과정이 이렇게 지저분하다는 것이 처음으로 전 국민의 눈앞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사형 찬성은 지금 약 52%입니다. 1990년대 중반 최고치에서 꾸준히 내려왔고, 전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은 사형을 지키는 몇 안 남은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더 위쪽 어깨로 다시 해 주세요." 이 한 문장은 지금 무엇을 뜻할까요. 저는 이것이 사형제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누군가를 끝내려고 애썼지만 끝내지 못했고, 그 실패를 숨기려 했고, 숨기지 못한 뒤에는 책임 대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모습 말입니다.

사형을 지키자는 사람과 없애자는 사람은 서로 정반대를 봅니다. 그런데 두 쪽이 함께 놓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이 일은, 그것도 남의 눈을 가린 채 감춰서 하는 일은, 결국 고친다고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계가 이렇게 자주 고장 난다면,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죽일까'가 아니라 '이 기계를 왜 아직도 돌리고 있을까'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우리는 콜린이라는 열아홉 살의 이름을 먼저 놓아야 합니다. 31년이 지나도 그 이름은 원래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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