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경보가 오지 않은 밤 — 정보 한 줄의 값
10월 13일 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졌다. 표적은 담니차 열병합발전소였다. 전기와 난방 열을 함께 만드는, 도시가 겨울을 나는 데 꼭 필요한 시설이다. 그런데 그 밤 키이우에는 공습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 시스템은 미사일이 이미 키이우 코앞에 다가왔을 때에야 탐지했다." 경보가 없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대피소로 내려갈 시간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그는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다고 했다.
왜 경보가 없었을까.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으로 올라갔다가 빠르게 떨어져, 발사되고 몇 분 만에 도착한다. 땅 위 레이더로는 늦다. 발사 순간의 뜨거운 열을 인공위성이 잡아내야 미리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동맹국들로부터 발사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 위성을 가진 나라는 사실상 미국뿐이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측근이 러시아 정유시설(원유를 휘발유와 경유로 바꾸는 공장) 공격을 멈추라며, 정보 공유를 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중단한 적 없다"고 부인했고,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정보는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위협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가. 답은 미국의 주유소에 있다. 미국 경유 값은 사상 처음 갤런당 6달러를 넘었고, 휘발유도 1년 전보다 30퍼센트 넘게 올랐다.
11월 3일 중간선거(임기 중간에 치르는 의회 선거)를 앞둔 대통령에게 이 숫자는 정치적 위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경유를 사들이는 '경유 딜'을 발표하며 제재(거래를 막는 벌칙)까지 일부 풀었다.
여기서 숫자를 한 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첫 물량으로 자랑한 30만 톤은 미국이 하루에 쓰는 경유의 절반쯤이다. 석유 분석가들도 값이 10~20센트 잠깐 내려가는 정도로 봤다. 공급을 늘리는 대책이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그 신호의 값은 우크라이나가 치렀다. 우크라이나는 정유시설 공격으로 러시아 정제 능력의 약 5분의 1을 망가뜨린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 자금을 끊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했고, 우크라이나는 이틀 동안 자제했다. 러시아는 자제하지 않았다.
11일 "에너지 휴전이 즉시 발효된다"는 선언이 나왔을 때, 우크라이나 정부의 반응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도 합의했다는 확인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선언 직후 러시아는 하르키우와 키이우의 발전소를 다시 때렸다. 종이에만 있는 휴전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에너지 시설'의 범위다. 항만과 제철소, 물류 창고도 여기 들어가는지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그런 곳을 계속 때리면 우크라이나 경제는 조금씩 말라간다. 오데사 항만을 떠난 배는 지난해 9월 266척에서 올해 9월 12척으로 줄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휴전으로 우크라이나가 얻는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여기다. 사람을 죽이는 압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경유 값은 주유소 간판에 숫자로 떠서 모두가 본다. 반면 새벽에 오지 않은 경보 한 줄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정치인에게 비용이 되는 것은 보이는 쪽뿐이다. 그래서 압박의 순서도 정해진다. 요란한 숫자는 낮추고, 보이지 않는 것은 먼저 자른다.
미국이 정보 공유를 일부러 끊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키이우 시민이 겪은 결과는 의도와 상관없이 같다. 경보 없는 밤이다. 누구도 의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압박이 된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 놓인 쪽은 협상에서 불리해진다.
이 일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같은 주에 유럽연합(EU·유럽 나라들의 연합체) 가입 협상을 한 걸음 더 진행시켰다.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품으려 하고, 미국은 전쟁을 값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둘이 갈라지면 유럽은 미국 없이 쓸 수 있는 감시 능력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 방공 정보도 상당 부분 미국의 위성과 정보 자산에 기대고 있다. 안보 보장에 값이 매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남의 도시에서 먼저 보고 있다.
그 밤 담니차 발전소는 불탔고 옆 아파트도 탔다. 사람들은 경보를 듣지 못한 채 창밖의 불빛을 보았다. 정보 한 줄의 값이 얼마인지는, 그 한 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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