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의 생각] 조사 대신 소송 — 전화번호 한 줄의 무게

이스라엘 텔아비브 법원에 수요일 아침 134쪽짜리 고소장이 접수됐다. 낸 사람은 로넨 바르, 2023년 10월 7일 당시 이스라엘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한국의 국가정보원 격)를 이끌던 인물이다.

상대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다. 요구액은 300만 셰켈(우리 돈 약 13억원)이고, 이유는 자기가 2023년 10월 7일 참사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큰 소송에서 실제로 다투는 사실 하나는 이상할 만큼 작다. 네타냐후는 그날 아침 바르가 자기를 깨우지 않았다고 했고, 바르는 총리 직통번호를 몰라 참모에게 알렸다고 맞섰다.

네타냐후의 반박은 이랬다. 직통 전화가 있었는데 왜 즉시 부르지 않았느냐, 그 한 통이었으면 몇 명을 살렸겠느냐는 것이다.

1,200명이 숨지고 251명이 인질로 끌려간 날의 책임을 두고, 지금 오가는 것은 11분의 시각 차이와 전화번호 하나다.

여기서 짚을 게 있다. 이 나라는 참사 뒤 3년이 지나도록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지 않았다. 국가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강한 조사 기구다.

네타냐후와 여당은 계속 반대해 왔다. 여당이 위원을 고르는 대체 조사안으로 버티다가 의회가 문을 닫으면서 법안도 끝내 넘기지 못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조사위 구성을 원한 국민이 74%였다. 그래도 제도는 움직이지 않았고, 진실을 밝히는 통로는 법정으로 갔다.

바르는 국가 조사위가 없으니 법원에서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는 문제는 여기다. 국가가 자기 실수를 조사하는 일을 개인 간 소송에 넘겼다.

법정은 진상조사위가 아니다. 원고와 피고, 두 사람의 이야기만 다투는 자리다. 1,200명의 죽음이 두 사람의 명예를 재는 저울 위에 올라간다.

바르가 요구한 것도 전체 진실은 아니다.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정보 기록의 공개다. 국가가 아니라 소송 당사자가 골라 내놓는 진실이다.

양쪽 모두 이 재판을 정치 무대로 쓴다. 총선이 13일 앞이다.

리쿠드당은 이번 폭로 물결을 좌파 정권을 세우려는 선전이라고 규정했다. 바르 쪽은 총리가 3년 내내 책임을 피하고 조사도 막았다고 맞섰다.

다만 바르가 결백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고소장에서 신베트가 제때 경고하지 못한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고 인정했다. 그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범죄적 과실'이라는 말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소송이다. 잘못은 인정하되, 더 큰 원인은 총리의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고소장의 절반은 정책을 향한다. 네타냐후 정부가 여러 해 동안 가자지구를 조용하게 유지하고, 하마스를 통치 세력으로 남겨 뒀다는 주장이다.

이 정책은 낯설지 않다. 카타르 자금이 2018년부터 이스라엘의 승인 아래 가자지구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여러 매체가 확인했다. 그 자금이 하마스를 키웠는지는 여전히 다툼이다.

두 사람 모두 여기서는 서로만 탓한다. 참사가 하루의 실수인지 여러 해의 선택인지는 재판의 쟁점이 아니다.

이렇게 큰 싸움인데 유권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1순위 관심사는 물가였고, 10월 7일 진상조사는 7%에 그쳤다.

큰 소리는 법정에서 나는데 투표용지 위에서는 조용하다. 진실은 재판과 선거라는 두 개의 다른 시계에 묶여 흘러간다.

선거는 곧 끝나지만 재판은 오래 끌 수 있다. 그동안 조사위는 여전히 없다.

내가 무겁게 보는 것은 소송 그 자체가 아니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국가의 의무에서 개인의 소송으로 넘어간 사실이다.

법정에서 이기는 쪽은 명예를 되찾고 돈을 받는다. 죽은 사람의 책임은 판결문 어디에도 없다.

조사하지 않은 나라는 배우지 못한다. 배우지 못한 나라는 같은 실수를 다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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